전남 함평여고·학다리고 통폐합 후폭풍
전남 함평여고·학다리고 통폐합 후폭풍
  • 고은별 기자
  • 입력 2018-03-16 15:57
  • 승인 2018.03.16 15:57
  • 호수 1246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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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채 전 교육감 책임져라” 무리한 학교 통폐합에 멍든 학생들
전남의 세 학교인 학다리고·함평여고·나주고가 이달부로 통합돼 ‘함평학다리고’가 됐다. 지난 2일 개교 후에도 공사가 한창인 함평학다리고 전경
[일요서울 | 고은별 기자] 전남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통폐합 과정에서 본인 동의 없이 전학 처리가 되는 등 부당한 처사를 당했다며 고발에 나섰다. 학생들은 현재 개교 후에도 미완공된 학교, 즉 공사가 한창인 교정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학업에만 매진해야 할 이들이 안전 및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하루속히 학습여건이 갖춰지고 학교생활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뤄지길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학교 문제를 공론화할 수밖에 없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본인 모르게 전학”…학교 통폐합도, 전학 처리도 학생동의 없어
‘미완공 학교’ 공사 소음에 굴착기 난입 등 학생안전 누가 책임지나


전남 함평에 살고 있는 함평여고 학생들은 지난 주말인 11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생활기록부를 조작 당했다’며 학교를 고발하는 글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왔고, 블로그·카페에도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글의 주요 내용은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의 ‘거점고 육성’ 정책에 따라 올 3월 1일자로 전남의 세 학교인 학다리고·함평여고·나주고가 통합됐으나, 그 과정에서 갖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복수의 학생들은 “제발 저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며 “저희는 학교의 거짓말에 너무도 많이 상처 받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예고 없이 전학이라니”

해당 글을 통해 함평여고 출신인 한 학생과 연락이 닿았다. 3학년생인 A양은 최근 장학금 증빙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출력하는 과정에서 함평여고 학생들의 동의 없이 학다리고로 전입(전학) 처리된 사실을 알게 됐다며 분노했다.

A양은 “두 학교가 통합된다는 사실은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학다리고로 흡수 통합되는 이런 그림에 대해 사전에 고지 받은 것도 없다”며 “학다리고로 전입된다는 내용도 미리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전남도교육청에 확인해 본 결과, 도교육청의 ‘거점고 육성’ 정책에 따라 학다리고·함평여고·나주고가 통합되면서 거점고로 학다리고가 지정됐다. 사립학교이던 일반 학다리고는 지난해 6월 공립으로 전환되며 함평학다리고가 됐다. 함평여고 학생들은 거점고로 학다리고가 그 명칭을 계승하며 지정될지는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학교 통폐합이 가시화된 2014년경부터 나주고는 신입생을 받지 않아 애초에 먼저 폐교됐다.

A양은 “통폐합 건도 동의한 적이 없는데 학교의 연혁을 이어 졸업하고 싶다는 게 우리의 바람이었다”며 “함평여고 명으로 졸업하게 해달라고 수차례 학부모들과 도교육청의 거점고 육성 추진단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A양이 보내온 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지난달 28일자로 이 학생의 학적사항은 학다리고로 전입된 사실이 확인된다. 새 명칭인 함평학다리고도 아니고, 통합 사실도 기재되지 않았다.

 
함평여고 출신 3학년생인 A양이 보내온 학교 생활기록부. 지난달 28일자로 이 학생의 학적사항은 학다리고로 전입된 사실이 확인된다. A양은 학적변경 과정에서 학생동의가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엉망인 학교시설
흙더미 속 공부하는 학생들


학생들은 고발 글과 함께 사진도 여러 장 올렸다. 외부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개교 후 학교의 사진이었다. 흙더미가 그대로인 건물 주변은 도로마감이 채 되지 않아 외부 보행이 힘들어 보였다. 교정 한 가운데 공사 폐기물이 쌓여 있고 어느 쪽은 맨홀 뚜껑마저 열려 있었다. 공사 중 깊게 파인 땅 주변을 철근으로 둘러놨지만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말 그대로 공사현장 그 자체였다.

학생들에 따르면 각 교실에는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TV 또한 설치되지 않았다. 급식실로 이어지는 나무계단도 허술해 걸어 다닐 때마다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이다. 아스팔트 깔린 도로가 무분별해 한 학생은 발을 헛디뎌 다칠 뻔한 적도 있다.

학교 건물은 현재 준공(사용승인)검사를 마치지 않아 안전도를 확신할 수 없는 단계다. 교육감 재량에 따라 임시사용승인만 났을 뿐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건물에 대한 실제 준공검사는 이달 말에서 4월 사이 진행될 예정이다.

 
전남의 세 학교인 학다리고·함평여고·나주고가 이달부로 통합돼 ‘함평학다리고’가 됐다. 지난 2일 개교 후에도 공사가 한창인 함평학다리고 전경
 현재 해당 학교는 본관과 남학생 기숙사만 지어진 상태다. 이 또한 이달 1일자로 완공 예정이었으나 개교 후 열흘이 지나서도 마무리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 내년 2월을 완공 목표로 여학생 기숙사와 다목적관이 건립된다. 학교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한참 멀었다는 얘기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공사 소음이 들리고 학교엔 굴착기가 다닌다”면서 “학생 안전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해야 하는 학교 내에 복도 및 교실 공사를 위해 출입하는 외부인이 너무도 많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또 “개교 후부터 친구들이 새집증후군 증상인 두통, 코막힘, 현기증, 기침 등을 겪고 있다”며 “학교에 날리는 정체 모를 흰 가루가 호흡기에 미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함평여고 학부모들도 불만이 크다. 학부모들은 학교 통폐합 과정에서 모든 부대시설과 기타 제반시설이 갖춰진다면 불만사항이 있더라도 감수할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본시설인 학교도 완공되지 않았고, 기숙사나 스쿨버스 이용에도 차질이 생겨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함평여고 학부모위원장인 B씨는 “함평여고 학생들이 거점고로 이동해서도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달라 했다”면서 “학교도 아직 공사 중이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편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심적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숙사 이용 문제를 두고도 학생 및 학부모 측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앞서 학교 측은 입주희망 신청을 받아 남학생 기숙사 한 층을 여학생들이 이용하게 했다. 시설 부족으로 입주하지 못한 학생들은 구 함평여고 기숙사를 이용 중이다. 그렇게 해도 수용하지 못한 인원은 군청을 통해 지역 내 스포츠텔을 사용하게 할 예정이다.

남·여학생이 한 기숙사 내 생활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진 않는다. 다만, 함평여고 학생들은 “이는 남학생 기숙사부터 짓고 여학생 기숙사는 다 지어지기도 전에 개교한 결과”라며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여학생들이 이용 중인 기숙사가 3개라는 건데 너무 대책 없이 학교를 통합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거점고로 통합됐음에도 새 교복이 마련되지 않아 현재 함평여고·학다리고 학생들은 본래의 교복 또는 자율복을 입고 다니며 학생 간 괴리감까지 느끼고 있다.

도 교육감에 대한 비판 여론

함평여고 측은 여고 학생의 동의나 사전 설명 없이 학적사항이 변경된 사실에 대해 과오를 인정했다.

학사를 담당하던 함평여고의 한 교사는 “교사 연수시기와 거점고 개교 시기가 맞물려 일정이 급박한 상황이어서 학생들의 동의를 미처 얻지 못한 채 전학 처리를 했다”고 해명했다. 전학 조치하게 된 계기는 행정 처리에 대한 미숙함으로 타 학교의 통폐합 전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고. 이 교사는 학생 및 학부모에게 안내가 없었다는 건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현재 학적사항과 관련된 갈등은 학생·학부모·학교·도교육청 교육과정과가 해결을 위해 상호협의 중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의 불만사항과 학교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학교 측 입장을 전했다.

일반적으로 학교 완공이 일정보다 늦어질 경우 교육청 및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가정통신문 형태 또는 간담회를 열어 지연경위와 세부일정 등을 설명하는 자리가 그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공사가 일부 미비 되더라도 학업에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교육감이 임시사용승인을 낼 수 있다”며 “다만, 학생·학부모와 교육청·학교 측 시각이 다를 수 있어 이 부분은 통신문을 보내거나 간담회 자리를 만들어 양해를 구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 거점고 통합과정에서는 이 같은 소통의 유무 자체에 대한 의견 차이도 극명하다. 학부모 대표는 “공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일절 양해의 행위가 없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반면 도교육청은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이 현재의 학습 여건에 큰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오히려 계획했던 1차 공사는 일정대로 마쳤다는 주장이다. 학교와 도교육청 측은 불완전한 시설공사를 최대한 빨리, 안정적으로 끝낼 수 있게 조치할 방침이다.

결국 함평여고 학생을 비롯, 모든 피해는 거점고 학생들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학생들은 본인들이 “어른들 정치놀음에 이용됐다”며 최근 교육감직을 내려놓고 전남도지사 출마 선언을 한 장 전 교육감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함평여고 학생들은 “우리는 장 전 교육감의 정치놀음과 믿었던 학교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며 “거점고 추진단도 지난해 말 해체가 된 판국에 장 전 교육감이 현직을 내려놓은 것은 이 비극의 주동자이자 책임자가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장 전 교육감은 학교 통폐합 사업인 거점고 육성을 재임 시절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한 학부모는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길 기대하며 교육감으로 선출한 것”이라며 “학교를 공사판, X판으로 해놓고 아이들을 몰아넣으려 (장 전 교육감을) 뽑은 건 아니”라고 말했다.

거점고 학생들은 “장 전 교육감이 교육을 목적으로 하려던 게 이런 것이라면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재임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것인 만큼 이번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장 전 교육감 측은 “퇴임 하루 전날에도 학부모들과 면담을 진행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재선 교육감을 지낸 장 전 교육감은 지난 15일 도교육감직 사퇴와 함께 6·13 지방선거 전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향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하는 등 입당 절차를 밟은 뒤 민주당 전남지사 경선에 참여할 예정이다.

고은별 기자 keb@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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