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대박’ 져도 ‘중박’, 무효도 손해 없어

[전수영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 1일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를 공고했다. 7월 말에 공고예정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어쩔 수 없이 며칠 연기했다.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오세훈 시장에게 이번 서울지역 물폭탄은 악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투표를 통해 대권 잠룡에서 곧바로 유력후보로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꺽일 수 있는 상황. 과연 이번 수해가 오세훈 시장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예상해 본다.
7월말 집중호우로 수도권지역이 ‘물폭탄’을 맞으며 온통 물난리를 겪었다. 그중 강남지역에서는 거세게 불어난 빗물로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우면산 산사태로 3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했다. ‘강남도 호우에는 어쩔 수 없구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로 잠수교, 청계천, 올림픽대로 등이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통제되었고, 지하철도 구간별로 여러 사고로 인해 출퇴근길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서초구 삼성 래미안에는 불어난 물로 배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울시가 긴급히 배수지원에 나섰으며, 용산구 한남동 일대 7세대 12명은 긴급대피를 하는 긴급한 상황에 몰리기까지 했다.
지난해 오 시장에게 다시 한 번 시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강남의 피해는 의외로 컸다. 아파트 가격이 최고 정점에 있는 대치동 일대는 수해로 인해 교차로가 불러난 물에 잠겼으며 통행을 하던 자동차와 버스도 물에 잠겼다. 그 결과 이 지역 일대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됐다. 또한 우면산 산사태로 3명이 목숨을 잃는 인명사고까지 발생하며 서울 시민들은 서울시의 수방대처능력에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던 강남 주민들은 곧바로 오 시장을 비난했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는 무상급식과 관련된 주민투표를 당초 계획대로 8월 24일에 진행한다고 1일 공고했다. 수해 복구에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를 강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폭탄’ 맞아도 꽃놀이패 포기 안 해
당초부터 오 시장은 8월 23~25일 사이에 주민투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인해 주민투표 발의·공고를 며칠 뒤로 미루고 데드라인인 1일 공고했다.
수해로 인한 피해가 크긴 했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 꽃놀이패를 묵혀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이번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의 결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본인 입으로 대권에 대한 의지를 밝힌 적은 없지만 정가(政家)에서는 오 시장을 대권 잠룡에 포함시켰고 시민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그런 오 시장은 이번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더 이상 잠룡이 아닌 수면 위로 부상, 강력한 여당 내 대권후보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선 한나라당 내 분위기는 그동안 관망적 자세에서 벗어나 오시장을 밀어주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유승민, 남경필 최고위원의 반대 속에서도 지도부는 ‘당의 적극 지원’으로 뜻을 모으며 이번 주민투표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런 지원 속에서 주민투표가 오 시장이 원하는 대로 ‘단계적 무상급식’으로 결론이 날 경우 오 시장은 유력한 대권후보로 바로 수직 급상승하게 된다. 내년 총선에서 약세가 예상되는 수도권 지역에서 서울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시민들에게 투표를 통해 신임을 받게 된다면 오 시장 자신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에게도 커다란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민투표 ‘패배’해도 밑질 것 없어
현재로서는 주민투표의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지만 만약 오세훈 시장의 패배로 끝날 경우에도 오 시장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오 시장을 지원하기로 결의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의일 뿐이지 적극적인 행동이 담보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열리는 해로 여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크게는 국민의 심판, 작게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말은 결국 수도권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뛰면서도 지역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말과 같다.
현재까지 몇몇 언론사에서 주민투표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오 시장이 주장하고 있는 ‘선별적 무상급식’ 이 조금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는 서울시민은 별로 없다.
서울지역 25개 지역구 가운데 5군데를 제외한 21개 구는 민주당 단체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며 이들은 모두 지난해 선거에 전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 터라 기본적으로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가 서울인 국회의원에게는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독려하는 것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쉽게 드러내놓고 주민투표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쉽지 않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주민투표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것이 강력한 드라이브로 해석되기보다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면서 주민투표까지도 끌고 가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만약 주민투표 결과가 전면 무상급식으로 나와도 오 시장에게는 당내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전국 어느 한 지역에서도 전면 무상급식과 선별적 무상급식을 놓고 한나라당이 목소리를 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이 외롭게 서울지역에서 주민투표까지 실시했으나 그 결과가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나온다면 오 시장은 곧바로 한나라당 서울시당과 지도부를 한꺼번에 비난할 수 있는 호기를 잡게 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는데 자신은 단기필마(單旗匹馬)로 야당의 포퓰리즘과 싸웠지만 지원이 없어서 결국 싸움에서 졌다고 항변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변명하기는 쉽지 않게 된다.
결국 오 시장은 주민투표에서 이기면 ‘대박’, 져도 ‘중박’은 될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결과 주민투표 ‘무효’… 그래도 이익은 있어
주민투표 결론이 전면 무상급식 됐든 선별적 무상급식이 됐든 오 시장에게는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주민투표 투표율이 33.3%가 안 돼 주민투표 자체가 무효화 돼 투표함을 개봉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이는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선 투표함을 개봉할 수 없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개표라도 해서 전면이 되던 선별적이 되던 결론이 나면 오 시장은 이에 따라 당내에서 자신만의 스탠스를 가지고 입지를 가짐과 동시에 보수층의 집결도 가져올 수 있지만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도저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오세훈 시장은 더욱더 힘을 내 주민투표를 독려할 것이고, 한나라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에 적극적인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오 시장에게 나쁠 것은 없다.
33.3% 이상의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오게 하는 것은 오 시장 자신만의 책임도 있겠지만 한나라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오 시장은 정치공세를 벌일 수 있다.
개표를 해서 패배했을 때처럼 한나라당과 서울시당에 그 책임을 일부 떠넘기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투표를 독려하면서 자신은 그동안 관심을 크게 보이지 않았던 보수세력을 우군으로 만들었기에 진정한 꽃놀이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주당,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과연 꽃놀이패를 쥔 오 시장에 대해 야당 특히 민주당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주민투표에 참여할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주민투표에 서울시민들을 독려하여 전면 무상급식에 한 표를 찍어달라고 호소하기보다는 오히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투표율을 33.3%에 못 미치게 해 투표함을 아예 개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투표함을 개봉하지 못할 경우 ‘이것이 서울시민의 뜻’이라며 오히려 오 시장과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에게는 이번 집중호우가 분명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주민투표 예상비용인 182억 원을 수해복구에 투입하라며 서울시를 향해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다. 반대로 오 시장은 수해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위기상황에 몰리고 있다.
오 시장은 4일 새로운 수해방지대책을 발표하면서 수해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서울시의 도백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그 속은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부재자 투표가 5일부터 시작됐다. 오 시장 및 보수세력은 5일을 기점으로 서울시민들에게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할 것이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주민투표의 부당성과 함께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20여일도 남지 않은 주민투표. 그 결과에 상관없이 오 시장에게는 이번 주민투표가 분명 기회다. ‘물폭탄’으로 위기를 맞은 오 시장, 그의 명은 이제 서울시민들에게 달려 있다.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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