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은 텅 비었는데 기업자금줄은 봉쇄
곳간은 텅 비었는데 기업자금줄은 봉쇄
  • 홍성철 
  • 입력 2003-11-20 09:00
  • 승인 2003.11.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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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치권이 때아닌 ‘돈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신당 창당과 총선정국을 앞두고 정치자금 특수를 기대해 볼 만한데 사정은 여의치 않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현대·SK비자금 사건 등이 대선자금 문제로 비화되면서 ‘돈줄’인 기업들이 몸을 바짝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망라해 각 정당의 살림은 바닥을 보이고 있고, 의원들의 개인후원회도 예전만 못한 실정이다.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선 “이러다 총선자금도 고갈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게 들린다. 비록 겉으로는 돈 안쓰는 선거 등 정치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현실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는 게 정치권의 하소연이다.

돈 가뭄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정당은 다름아닌 민주당. 지난 9월29일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민주당은 현재 밀려있는 임대료만 30억원대에 달한다. 한달 임대료가 3억원인 여의도 중앙당사 임대료를 열 달 넘게 지불하지 못하고 있는 것. 보증금 15억원을 감안해도 나머지 15억원을 고스란히 부채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얼마전 선관위로부터 지원받은 20억여원의 국고지원금도 사무처 당직자의 월급과 퇴직금 등으로 모두 지출했다. 남아 있는 돈은 2억여원뿐이다. 당장 이번 달부터는 사무처 당직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또 오는 28일로 예정된 임시전당대회 예산도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민주당은 임시방편으로 중앙당 축소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건물주와의 견해차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민주당은 전당대회 이전에 중앙당 후원회를 개최해 후원금을 모금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장벽에 부딪쳐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가 5대그룹을 비롯한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후원회를 열어도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계산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노 대통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이후 당 위상과 영향력이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도 어려운 재정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고위당직자는 “작금의 정국 상황을 감안하면 후원회를 연다해도 후원금이 얼마나 모이겠느냐”며 “전당대회 이후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다 해도 당분간 재정난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한나라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부자가 망해도 3대를 간다고 하지만 이제 한나라당도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는 푸념이 나돌 정도다. 현재의 당 재정상태를 빗대어 ‘IMF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표현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의원들 개개인은 여전히 부자 소리를 듣고 있지만 당 재정은 밑바닥을 보이고 있다.한나라당은 언제나 50억원 안팎의 후원금 잔고가 있었다. 지난해 대선패배 이후에도 이러한 잔고는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 후원금 잔고는 텅 비었다. 한나라당 재정이 바닥이 났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12월중에 중앙당 후원회를 열어 빈 곳간을 채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SK비자금 사건이 확산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에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후원회 폐지를 약속한 만큼 더 이상 후원회를 통한 후원금 마련도 어렵게 됐다.여기에 재정확보 차원에서 추진했던 400억∼ 500억원대 천안 연수원 매각건도 계약직전 무산되고 말았다.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긴축살림과 선거공영제 제도화 등으로 국고지원을 늘려가겠다는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당 여성대회 등 각종 크고 작은 행사를 축소하거나 취소하고 있고, 각 사무실의 경상 경비지원도 전면 중단하거나 대폭 줄이는 등 자구책을 마련중이다. 월 200만원씩 내려보내던 지구당 경비지원도 12월부터 중단할 계획이다. 오는 12월 지급될 국고보조금 18억원을 목 빼고 기다리고 있는 게 거대 야당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정신적 여당임을 자임하고 있는 열린우리당도 살림살이는 궁핍하기 짝이 없다.

열린우리당의 궁핍한 살림은 창당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풍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살림을 꾸려나갔던 과거 여당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은 청와대 등 외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없이 창당작업을 진행했다. 오히려 소속 의원들의 사비를 털어 창당작업을 진행할 정도였다. 열린우리당은 특히 스스로 ‘깨끗한 정치실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만큼 돈 문제에 관한 한 최대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김근태 원내대표는 판공비로 월 100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과거 원내총무들이 월 수천만원대의 판공비를 썼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여기에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아예 판공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지급했어야 할 당직자들 첫 월급도 지난 5일에야 지급됐다.

11일 중앙당 창당대회 전까지 집중된 49개 지구당 창당대회에 대해서도 중앙당은 300만원씩만 지원했다. 이것도 지구당 운영위원장 등이 대출을 받아 먼저 창당대회를 치른 뒤 연말 국고보조금이 나오면 사후에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다.이처럼 실질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수입·지출 규모를 보면 과거 집권여당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후원회를 연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치비자금 사건이후 모든 정당이 중앙당후원회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재정 총무위원장은 “연말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될 예정이지만 뾰족한 예산 확보 방안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당분간 지도부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의 주머니를 털어 당 살림을 꾸려나가는 고육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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