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가 접촉한 검찰관계자들의 현정권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현정권에 대한 비토를 쏟아냈던 검찰관계자들이 최근 들어서는 우호적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검찰관계자는 “검찰에게 이 정도 힘을 실어주는 정권이 또 있었나”라며 “국민들에게 항상 욕만 먹어 왔는데 요즘 같아선 검찰에서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 동안 현정권의 급진적 개혁문제 등을 놓고 적잖게 비판해 왔던 그가 처음으로 현 정권을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검찰과 군대는 상명하복의 조직체계가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보수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조직인데 현정권은 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개혁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그런 그의 시각이 어느 순간부터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비단 이 관계자뿐만 아니다. 상당수 검찰관계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운’ 시각을 보내고 있다.
검찰내 분위기가 반노에서 비노, 그리고 친노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사로 검찰은 그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을 지지하는 팬클럽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국민들의 애정도는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됐느냐는 것엔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다. 정치권, 특히 야권은 ‘정치검찰’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신권력시녀’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며 “청와대나 열린우리당, 검찰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정권에서는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게 드러내 놓고 편향적 수사를 했지만 지금은 양쪽 모두 건드리는 것처럼 하면서 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대선자금에 대해선 둘 다(노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자유로울 수 없는데 누가 더 많이 받았냐를 문제삼아 한나라당을 와해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검찰이 정권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수사 의혹이 제기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이러한 한나라당의 의구심은 검찰조사를 받고 나온 당직자 박종식 부장의 발언을 계기로 폭발하고 있다. 박부장은 검찰의 소환조사 과정에서 담당검사가 “한나라당에 충성하지 말고 새로운 물결에 동참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과거 정치검찰로 회귀하는 불명예를 안겨준 일대 사건으로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조연을 맡은데 통탄한다”며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정준길 검사의 보직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최병렬 대표는 “검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게 너무 황당하다”며 “대통령이 치밀하게 계산해 한나라당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면서 신당을 띄워 재미를 보려 판을 벌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신당을 띄우기 위한 기획수사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재오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7일 국회본회의 5분 발언에서 “정 검사의 발언은 청와대가 검찰에 일일이 지시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정치검찰의 부활을 의미한다”며 “검사의 말은 청와대와 검찰이 짜고 신당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수 대검 공보관은 “한나라당 당원으로서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바라는 대선자금에 대한 진실규명을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설득한 것이다”며 ‘한나라당에 충성하지 말고’라고 말한 적은 없다” 고 대응했다. 검찰은 한나라당의 ‘정치검찰’ 주장에 대해 ‘대선자금 수사 흔들기’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정치쟁점화할 방침이다. 특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민주당 일부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핵심당직자는 “대선자금 수사를 하는데 검찰과 청와대, 열린우리당이 대응하는 게 거의 비슷한 것은 사실 아니냐”며 “청와대는 검찰에 힘을 실어주고, 힘받은 검찰은 과감히 밀고 나가면서 국민지지를 받고, 열린우리당은 뒤에서 받쳐주며 3박자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노대통령은 지난 4월 검사와의 대화를 가지면서 검찰독립을 약속했는데 어떻게 검찰수사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청와대와 검찰교감설은 말도 안 되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김은숙 iope7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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