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기준법 제27조가 근로자에 대한 해고통지는 그 사유와 시기를 명시한 서면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해고의 사유와 시기가 명시된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해고는 그 효력이 없다. 그런데도 A 방송국 입장에서는 해고통지서를 주는 방법으로 재빨리 기자와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 기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는 덮고 지나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 삼았다가 해고된 사례는 기자의 사례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히, 기업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인 조직체로서 일정한 방향성을 사전에 정해두고 나면 그 방향에 맞추어 징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이와 같은 경우 회사 내부의 징계절차는 감사실 또는 인사팀에서 특정인을 향하여 표적수사에 준하는 징계의 목표(예컨대, B는 해고대상자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하니 이에 부합하는 자료를 모두 찾아내라는 목표 등)를 미리 설정해두고 그 목표를 도출하기 위해 적합한 자료를 찾기 위해 동료직원들의 진술서를 받고 적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방식으로 비밀번호를 풀어서 각종의 자료를 뒤져본다.
압수수색 영장에 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장에 의한 수사에 준하는 각종의 조사방법이 동원된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조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면서 회오리처럼 그 영역을 넓혀나간다. 그 과정에서 사내에서의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있지도 않았던 비위행위가 존재하는 비위행위로 탈바꿈하고, 한 근로자의 전인격적인 면모가 왜곡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결국 근로자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회사에 대하여 일정한 제도의 개선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한 문책을 요청한 것뿐인데 정작 조사되어야 할 비위행위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사람 하나 이상한 사람 만드는’ 결과에 이르고 해고에까지 이르게 된다. 통상의 경우, 회사가 근로자를 부당해고한 사실 자체만으로는 근로자의 회사에 대한 위자료 청구가 인용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해고할 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의도 하에 고의로 어떤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만들거나 내세워 징계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해고한 경우는 문제가 된다.
또 해고의 이유로 된 어느 사실이 취업규칙 등 소정의 해고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거나 해고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이유로 징계해고에 나아간 경우 등 징계권의 남용이 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그 해고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정당성을 갖지 못하여 효력이 부정된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는 위법하게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되어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되어 위자료 청구의 대상이 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아직까지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직장 내 성희롱이나 부당한 인사권 행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취업규칙의 재정비 등을 통하여 피해사실에 대한 회사 내부적인 조사 등을 요청한 근로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기를 희망한다.
YK법률사무소 조인선 변호사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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