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창올림픽=정치올림픽? 역설의 정치
[기고] 평창올림픽=정치올림픽? 역설의 정치
  • 이경립
  • 입력 2018-01-26 16:07
  • 승인 2018.01.26 16:07
  • 호수 1239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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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화합의 올림픽 ‘정치권 다툼’ ‘희생량’ 전락
- ‘노이즈 올림픽 마케팅’ 성공(?) 나경원 ‘보수 아이콘’으로
 

국민적 관심 없이 조용히 치러질 것 같았던 평창 동계올림픽이 북한의 참가로 격변하고 있다. 그러나 격변하는 올림픽보다 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싸움의 소재를 찾아 헤매던 우리 정치권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다.

우리는 흔히 올림픽을 평화와 화합의 제전이라고 한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고대 올림픽 대회는 처음 피사탄이라는 도시국가에서 주관하다가 엘리스와 스파르타가 공동 주관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엘리스가 단독으로 주최했다고 한다.
 
엘리스는 올림픽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엘리스 국왕은 올림픽 대회를 열기 3개월 전에 그리스 전역에 휴전을 선포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을 물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어떤 논쟁이나 충돌도 금지됐고 사형도 보류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전쟁과 논쟁, 싸움은 멈추고 평화를 만끽하고자 했던 것이 고대 올림픽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 생각도 평화와 화합을 중요시한 고대 올림픽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이전의 올림픽과 다르지 않게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에 입각해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행사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부정해서는 안 되는 명제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현장에서는 이러한 올림픽 정신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전쟁과 싸움을 접고 평화와 화합을 만끽하고자 고안된 올림픽이었지만, 지금은 그 올림픽이 정치권 싸움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또한 슬픈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은 503호 수의를 입고 영어의 몸이 되어 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각되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그 자체가 없었더라면 이번 평창올림픽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임기 마지막까지 꽃길을 걸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의 새누리당은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해 줄 것을 간절히 원했다.
 
더군다나 작년 12월 20일에 실시되어야 했던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후보자가 당선되었더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평창올림픽 폐회식이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사실 그들은 아직도 한참 자숙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그들의 싸움꾼 본성을 자극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이기도 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지난 19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공동 입장이 올림픽 헌장 위반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보수 야당의원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실으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이러한 그녀의 승부수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나경원 의원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에서 파면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5일 현재 6일 만에 25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국민청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겉보기엔 나 의원이 정치적 위기를 맞은 듯하지만, 실제 평화올림픽을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아이콘이 되어 그토록 바라던 서울시장 후보에 성큼 다가섰다. 따라서 현재까지 평화올림픽으로 가장 득을 본 정치인은 역설적이게도 나경원 의원이 되었다.”라며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 이 싸움에서 우선 승리를 거머쥔 것은 나경원 의원이었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은 ‘2013 평창스페셜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2013년 6월 2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3 평창스페셜동계올림픽’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경기위원회 방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북한 선수단 초청을 위해서 공식,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노력하고 있다”며, “언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 SOI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 드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던 조직에서 북한 선수단 초청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기자회견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로남불이 정치권에서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라지만, 좀 뻔뻔하다는 느낌은 든다.
 
북한의 참가로 평창올림픽이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은 이가 있다. 다름 아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지난 연말 외교부의 ‘위안부합의 검증TF’ 발표에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불참할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았던 그는 북한의 참가가 확실해지자 슬그머니 개회식에 참가하겠다며 숟가락을 얹은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평창올림픽 개회식 불참의 명분이 없었다.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도쿄인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차기 올림픽 개최지의 최고책임자가 불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베의 군색한 변명을 들을 기회를 김정은이 원천 차단한 격이다.
 
평창올림픽을 활용한 정치 열기가 국내외로 후끈 달아올랐다. 김정은도 트럼프도 아베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은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의 보수 정치인들도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면서 흩어져 있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으로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치적으로는 가장 손해를 본 것 같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2~24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25일 발표한 2018년 1월 4주차 주중집계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59.8%를 기록하여 취임 후 처음으로 50%대를 기록했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35.6%로 취임 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찾아온 최초의 정치적 위기가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참가로 국민적 관심사,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른 평창올림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지금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광과 무기력한 야당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은 무탈하게 국정수행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라고도 할 수 있는 6.13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보수 야당도 염치불고 전면전에 나설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안철수와 유승민은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양당 간의 통합을 하려한다. 여야당 간의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됐다. 역설적이게도 평창올림픽이 정치올림픽의 무대를 제공했다.

이경립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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