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 낀 하늘 아래 웅장한 모습으로 승선을 준비하는 분주한 불빛이 사방에서 번뜩였고 단번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한국과 멀지 않은 대만에서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기륭항을 모항으로 두고 운항을 하는 아쿠아리우스호는 밤 10시, 작은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밤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기륭에서 오후 7시에 승선(타이베이에서 기륭까지 약 1시 간에서 1시간 30분 소요) ▶ 오후 10시 이시가키로 출발 ▶ 다음 날 오전 11시 이시가키 도착 ▶ 이시가키 투어 ▶ 오후 7시까지 승선 ▶ 오후 9시 이시가키 출발 ▶ 다음 날 오후 4시 기륭 도착(항구 정박 후 순차적으로 하선 절차 진행)

오후 7시, 이시가키로 출항하는 슈퍼스타 아쿠아리우스호의 승선이 시작됐다. 여객터미널은 이른 시간부터 승선을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적였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스타크루즈 여행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info> 안전 훈련
출항 30분 전, 모든 승선 인원은 객실 안 혹은 집합 장소에 배치돼 있는 구명조끼를 가지고 안전 훈련에 참석해야 한다. 장소는 7층 야외이며 본인의 집합 장소는 객실 카드 혹은 객실 문 뒤에 적혀 있으니 체크할 것. 안전 훈련 시간에는 크루즈 내의 모든 영업장 및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8층의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안내문과 함께 내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3명도 충분히 누울 수 있는 넓은 침대와 TV, 옷장 그리고 티 테이블과 소파까지. 짐을 한 곳에 내려놓고 한국어로 친절하게 적힌 안내문을 읽었다. 비상시 행동 방침과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에 대한 내용.

후끈 밀려드는 습한 공기와 얕은 물 냄새. 난간에 기대어 밤바다에 일렁이는 항구의 불빛을 바라봤다.
다가올 아침,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 푸르게 빛날 바다를 상상하면서. 조용히 들려오는 바닷물 소리가 크루즈에서 맞이할 평화로운 아침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물소리. 활짝 열린 커튼 사이로 새벽빛이 들어왔다. 오로지 바다 위에서, 크루즈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서둘러 객실을 빠져나와 곧장 12층 선상 중앙까지 올라갔다. 새벽의 고요함을 가르는 파도소리와 수평선 위를 떠다니는 구름, 아쉽게도 태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구름 속에서부터 환하게 쏘아 올리는 햇빛은 어둠을 밀어 내기에 충분했다. 구름에 걸친 분홍빛. 크루즈는 동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천창이 훤히 뚫린 선상에 있자니, 바다 한가운데에 오롯이 떠 있는 오묘한 느낌. 햇빛이 내려앉는 자리부터 바다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하룻밤 새에 도착한 일본의 이시가키. 이것이 바로 크루즈 여행의 묘미다. 아쿠아리우스호가 잠시 머물고 갈 이시가키는 이국적인 풍경과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동양의 몰디브라고 불린다. 반나절의 짧은 머뭄만으로도 그 표현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던 이시가키 여행.

오전 9시 30분, 10층 중앙의 스타더스트 라운지에 모여 하선 절차를 진행한다. 챙겨야 할 것은 여권 사본과 객실 카드. 투어를 신청했다면 투어 코드와 버스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는데 잘 보이는 곳에 부착하면 된다. 일본 입국을 위한 심사 절차가 진행되며 이때 입국이 거절되면 하선할 수 없다.

이시가키 최서단에 있는 우간자키 곶에는 하얀 등대 하나가 서 있다. 항구에서 등대까지는 차로 약 30분 정도. 주변에 배경처럼 깔리는 청색의 바다와 녹색의 언덕은 등대와 어우러져 엽서 사진에 나올 법한 푸른빛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날이 깨끗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던 화창한 날씨. 등대에 올라 가파른 절벽 아래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손을 담그면 손이, 발을 담그면 발이 파랗게 젖을 것 같은 색이 아름답게 물결쳤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길까지 올라가 뒤를 돌아봤다. 바다와 절벽, 하얀 등대가 햇빛 아래 환한 빛을 머금고 유유자적, 그렇게 서 있었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정말 아름다운 비치라고 소개한 카비라 만. 이곳은 이시가키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이다. 비치 입구에 있는 작은 사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나무와 나무 사이로 마법처럼 황홀한 풍경이 살풋 비쳤다.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맑은 물과 작은 섬들로 둘러싸여 있는 바다, 그리고 모래사장에 정박해 있는 하얀 배와 물장구치는 아이. 냉큼 뛰어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물은 따듯했고 파도는 부드럽게 밀려왔다.

그래도 괜찮다. 그저 이 에메랄드빛 바다에 닿아본 것만으로도 이시가키에 대한 추억이 조금 더 반짝이게 남아 있을 테니.

이시가키 투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일정인 이온 막스 밸류 쇼핑몰. 일본까지 온 승객들이 기념품과 선물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 타임이다.
여행객들 사이에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한 제품들을 대부분 찾을 수 있다. 약은 물론 화장품이나 일본 과자까지. 5000엔 이상 구매하면 면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 시간까지 이시가키에 있기보다는 승객이 빠져나가 한가로운 크루즈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다.

아쿠아리우스호에는 4개의 무료 레스토랑과 2개의 유료 레스토랑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 모닝 티와 에프터눈 티, 심지어 야식까지 책임져 준다.





크루즈에서만 즐길 수 있는 멋진 시간 중 하나가 바로 바다를 배경으로 선상에서 수영하며, 선베드에 누워 태닝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꿈꿔 왔던 상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하고 또 행복한 일이다.

12층 선상 중앙에는 아이들을 위한 풀장과 자쿠지가 있다. 선 베드에 누워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바다를 감상하는 시간, 이 역시 크루즈가 선사하는 최고의 순간.

10층 선수에 위치한 스타더스트 라운지에서는 매 시간 다양한 공연이 진행된다. 아쿠아리우스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동화 나라를 여행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음악과 춤으로 표현한 ‘Queen of Hearts Show’.

또한 IR라운지(10층 중앙)와 오세아나, 스파이시스 야외 바 등 곳곳에서 밴드 공연이 시간마다 진행된다. 일정을 확인하고 선내에서 공연투어를 다니는 것도 크루즈를 즐기는 또 다른 득템이다.

밤 11시 30분부터 자정까지 크루즈 직원들이 특별히 준비한 공연이 스타더스트 라운지에서 진행된다. 핑거푸드도 준비돼 있어 늦은 밤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밤바다를 항해할 때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크루즈 여행을 해도 좋다. 하늘에 빈틈없이 꽉 들어찬 별들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
아쿠아리우스호에서 별을 감상하려면 무조건 선수로 가자. 밤이 되면 조명이 모두 꺼져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운이 좋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도 만날 수 있을 것.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프리랜서 엄지희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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