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의 초점과 본질을 흐리고 왜곡시켜 정치적으로 피해가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통합신당 주변에서는 안풍 사건을 놓고 한나라당이 ‘정치공작’ ‘야당탄압’ 등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도 나온다.정말 청와대나 통합신당처럼 두 거대 야당의 반응은 과연 ‘정치적 위기 관리’일까. 만약 상당한 타격을 예상한 야당들의 생존 차원의 몸부림이라고 한다면 총구는 야당에만 집중될 것인가. 이 논리대로라면 기타 정치 세력, 구체적으로 통합신당에는 아무 영향이 없을까.정치권 판도 변화를 전제로 한 질문들이다. 정치 논리로 해답을 찾기에는 SK 비자금 사건에 거론되는 인물들의 소속이나 성향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견해다.구여권인 민주당에서는 A의원과 또 다른 A씨, K, J 의원 등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A의원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민주당 인사들의 경우 구여권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검찰-청와대 교감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구여권에 대한 여론 악화, 상대적으로 상승되는 통합신당의 입지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초기부터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자금 유입’이라는 ‘범죄 수사’를 끌어냈다는 것. 비자금 조성과 정치자금화에는 여야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이 거론되는 것은 부수적 효과라는 게 야권의 해석이다. 이 해석대로라면 청와대와 통합신당은 대략 두 가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하나는 두 야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방향으로 수사결과가 모아질 경우 외부인사 영입이 자연스레 어려워지게 되고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언급한대로 한나라당까지 구렁텅이에 밀어 넣을 수 있다. 당적 포기로 대내외적으로 여론정치를 선포한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최소한 여론의 틀 안에서는 한나라당을 꺾을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게 된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검찰이 청와대의 사주를 받아 ‘정치공작’에 뛰어들었을 공산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통합신당으로 거처를 옮긴 이상수 의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가 걸림돌이다.
‘검란’으로 표현되는 집권 초기 청와대와 검찰의 대립 이후 청와대는 노 대통령과 검찰의 교감설이 나올 때마다 단호하게 ‘NO’로 일관해왔다. 토 하나 달지않는 청와대의 단순한 대응에 한나라당이 고민하는 것은 상당 수 국민이 청와대의 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여론정치에 패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숙고를 거듭하게 하는 대목이다. 2002 대선 후반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이상수 의원이 이 한 줄의 이력 때문에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전망도 청와대-검찰 교감설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민주당에 SK 비자금이 유입됐다면 사무총장이 몰랐을 리 없고 이상수 의원이 이 자금을 활용했다면 민주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부분적으로 통합신당에 대한 수사로 요약되게 된다.
그래서일까.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상수 의원이 통합신당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다소 앞선듯한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이것은 노심(盧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가오는 총선에서 정신적 친정(통합신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 자명한 마당에 그런 무리수를 두겠나” 야권의 한 인사의 말이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없다면 아군의 희생을 극소화시키는 게 전략의 기본이다.어떤 시나리오가 힘을 받든 간에 칼자루는 검찰이 쥐고 있다.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는지 여부는 논쟁으로 끝날 수 있어도 수사 방향은 어느 정도 심정적 정황을 제공하게 마련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여부와 이에 따른 정치 판도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된다.
김지산 sa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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