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 편해도 입소 꺼리는 노숙자들

해마다 느는 노숙인 지원 예산···최저임금 월급 맞먹어
노숙인들, 규칙‧금주(禁酒) 싫어 “시설 안 가”
지난 2012년 급증한 서울시의 노숙인 예산을 둘러싸고 다음 해인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시 추산 노숙인은 4362명이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새누리당)은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해 “서울의 노숙인 숫자가 올해(2012년) 8월 현재 4362명인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가 노숙인 1명당 연간 962만 원 가량을 쓴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시는 당시 신설한 노숙인 시설 기능 보강 사업에 13억1500만 원, 저소득층 신용회복‧저축관리 사업에 2000만 원을 배정해 놓고도 노숙인 자립‧자활률 등 사업 효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심 의원은 강조했다.
시가 당시 5년간(2008년~2012년) 노숙인 지원을 위해 쓴 예산은 총 1870억 원에 달하지만 노숙인 시설 입소율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시 노숙인 예산은 해마다 10~14% 늘어나고 있다. 올해 예산은 47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내년에는 5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 전문가들은 전국 지자체 노숙인 관련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서울시가 차지해 수백억 원을 쓰고도 노숙인을 크게 줄이지 못하고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가 노숙인 한 명당 들이는 연간 예산은 2012년 962만 원가량에서 해마다 늘어 올해는 1473만 원에 달한다. 올해 최저임금인 월급 135만 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 비해 노숙인은 매년 약 5%씩 줄어 올해 3241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투입 비용에 비해 실적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시가 집계하는 노숙인은 거리에서 배회하는 ‘거리 노숙인’과 노숙인 지원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 노숙인’으로 나뉜다. 예산 중 가장 많은 액수가 시설 운영에 들어간다. 전체 예산의 절반인 241억 원 정도다. 그러나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 대상 봉사 관계자들은 “노숙인들은 시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예산을 투입함에도 불구하고 현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기자는 서울에서 노숙인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상주하는 노숙인만 해도 수백여 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곳이다. 드나드는 노숙인 수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숫자가 모여 있는 장소다. 노숙인이 몰리는 탓에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 진료소, 노숙인 지원센터 들이 밀집해 있다.
당시 서울 아침 최저기온은 -9도, 낮 최고 기온은 1도로 매서운 추위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서울역 앞에는 대낮부터 소주‧맥주 등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노숙인들이 보였다. 서울역 역사 내부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이용객과 노숙인이 뒤섞여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숙인 A씨는 “그나마 깔끔하게 하고 승객인 척 해야 안 쫓겨난다”고 토로했다.
역사 내부 바닥에 앉아 있는 노숙인은 없었다. 그러나 외부에 설치된 흡연구역에서 추위를 피하거나 돈을 구걸하려고 서 있는 노숙인들이 있었다. 또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박스‧가방 등의 짐을 끌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추운 탓인지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서울역 지하철 역사와 인근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10명 남짓한 노숙인만 있을 뿐이었다.

십자가선교회 관계자는 “매주 목요일 노숙인 예배가 열린다. 11년 정도 진행했다. 또 청량리이용학원(이용사자격증전문학원), 서울역이미용봉사회 회원들이 매주 목요일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역 주변 노숙인들과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이미용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량리이용학원 봉사 관계자는 “나만 해도 9년째 봉사 중이다. 평소 40~50명 정도의 노숙인 머리‧수염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 관계자에게 노숙인의 속사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이처럼 시에서 수백억 원을 들이고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선순위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노숙인 지원 시설은 금주(禁酒)가 원칙이다. 상당수 노숙인은 알코올중독자다. 시설이 편해도 입소를 꺼리는 편.
이날 기자에게 다가와 “1000원만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던 노숙인 B씨는 “(노숙인에게) 연간 1500만 원(가량)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그것이) 진짜라면 우리가 이렇게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나 말고도 대다수의 노숙인은 단체 생활, 규칙적인 생활 자체를 싫어한다. 시설에다가 돈을 쏟아 붓는 것이 무용지물이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시설 운영이 아니라 정신 상담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 특히 알코올중독 치료를 우선으로 꼽는다. 하지만 정신보건법상 노숙인의 강제 입원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노숙인에 대한 지원 대책을 내놓을 때 정확한 현장 파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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