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제 개헌-②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도박’이 시작됐다. 어찌 보면 올 것이 오고야말았다는 시각도 있다. ‘개헌’추진은 2007년 대선정국을 판가름하는 판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식 ‘올인’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제2의 탄핵정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임기단축(=하야)’은 없다고 못 박았다. 노대통령의 속내가 궁금해지는 도박게임이 시작된 형국이다.
대선을 앞두고 노대통령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이제 정치권의 예상대로 ‘개헌’의 시나리오가 등장했으니 남은 건 ‘군 임기단
축’ 문제다. 노대통령은 그만의 독특한 정치기법을 다시 이용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다 버리기’와 ‘다 걸기’다. 100%올인 정치전략 구상이다. 그는 ‘숙명’을 거역하는 운명론자에 가깝다.
지난 2004년 탄핵정국 때도 마찬가지다. 그 정치적 승부수는 17대 총선에서 거대 여당으로 가는 길목을 열었다. ‘미디어’도 한몫했다. 당시 탄핵소추가 부른 노대통령의 칩거생활은 반복적인 영상기법을 동원, 공중파를 타고 안방극장에 전파됐다. 이 때 노대통령에겐 정치역정에서 하나의 ‘반전드라마’가 연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노대통령의 탄핵소추 여파가 낳은 17대 총선에서의 여당승리는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파급효과를 불러 왔다. 그러나 지금 불쑥 내민 노대통령의 개헌추진은 무턱대고 덤비는 ‘돈키호테’전략은 아니라는 점이다.
노대통령의 승부욕은 모든 것을 다 내던질 때, 또 다른 새로운 드라마가 연출됐다는데 파괴력이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긴장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개헌정국이 불러온 파장은 또 하나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며 “(노대통령의 기질로 봐선) 이대로 포기하거나 물러날 인물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 같은 정국에선 2007년 대선은 단연 한나라당의 승산이 점쳐진다.
‘개헌카드’엔 진짜 속내
이 때문에 불쑥 꺼내는 ‘개헌카드’는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엿보기 힘들다는 시각이다. 이번에도 노대통령은 ‘탈당’이라는 조건부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나라당을 향해 벌이는 승부수다. 하지만 제2의 탄핵정국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무현식 올인 전략에 대중들이 한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평
가했다.
이 때문인지 노대통령은 ‘임기단축(=하야)’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정치적 꼼수’, ‘정략적 의도’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겠다는 산술적 계산에서다. 노무현식의 절묘한 호소력이다. 노대통령의 절박한 탄식은 대중들의 환심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리트머스(litmus)효과다.
한나라당 분열, 여통합 유도
여론조사전문기관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대중들의 교묘한 심리를 파고들어 역이용하는 효과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노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을 높이고, 개헌추진 논의를 이끌어내는 연속효과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선의 핵심키워드는 역시 ‘경제’문제다. 더 나아가 ‘평화공존, ‘성장담론 수용’, ‘계층간의 갈등’,’우경화 흐름’ 등 다양한 공약과 전략 등이 나올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핵심관계자는 “개헌 추진은 한나라당의 분열을 초래하고 여권의 통합을 유도하는 길닦기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개헌정국이 부른 노대통령의 ‘제2 탄핵’이라는 과대망상. 개헌은 대선과의 함수관계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정치적 변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국회의원 개헌 관련 반응 “무시전략 역풍(逆風)된다"
개헌정국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국민중심당 등 야4당은 일제히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개헌 시기, 방법 등에서 다분히 정략적인 의도가 숨어있다고 비판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나온 ‘개헌’발언인 만큼, “진정성은 없다”는 시각이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각 의원들에게 언론과의 접촉을 삼가라는 함구령까지 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논의 자체가 공론화될 경우, 자칫 ‘여론몰이’를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날 한나라당 개혁소장파 그룹인 고진화, 원희룡, 남경필, 권오을 의원 등은 “당론과도 다르지는 않지만 개헌에 대한 국민여론에 적극 대응할 필요는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무시전략’으로 나오면 되레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고 의원은 “개헌 논의를 무시한다면 여론향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개헌논의에 대한 찬반양론이 이뤄져야한다”는 주장을 폈다.점심 무렵에서야 회의를 마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개헌 논의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눈치였다.
같은당 고흥길 의원은 “당론과 비슷하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며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메인스트립일뿐 한나라당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공성진 의원은 조심스런 태도로 “개헌과 관련해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다”며 “노대통령 좋은 일 시킬 것이 없다”는 얘기를 했다. 충청권의 홍문표 의원은 “개헌 논의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획인지부터 생각해야한다”면서 “여론몰이로 끌려가는 상황이 되어선 안된다. 국민들이 적극 대응해야한다”는 시각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역시 반발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개헌은) 정치적인 중립 확보가 중요하다”며 “개헌의 진정성을 위해선 특정 정파에 몸담아서는 안된다”며 노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역시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하겠다는 것은 정략정치의 판도라상자”라는 견해다. 심 의원은 “개헌의 방법, 시기, 절차 등을 거쳐야하는 데 있어서도 최소한의 국민적인 합의나 정당정치내의 진지한 논의조차 없었다”며 “정략적 의도”라는 것이다.
여권 내에선 개헌추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은 “(개헌은) 국정혼란을 초래하는 일이다. 부동산 정책 등 민생현안에 신경써야할 대통령이 정치에 열중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며 “국민적 동의와 토의, 합의를 통해 (개헌추진은) 이뤄져야한다”고 했다. 반면 문병호 의원은 “사실 대통령 5년 임기는 레임덕 현상 등으로 인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며 “4년 연임제는 국민들에게 중간평가를 받는 좋은 기회이고, 5년 단임제의 폐단을 막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
##대권주자들의 손익계산 이명박 “밑질 건 없는데 여론이…”
2007년 개헌바람은 대권주자들에겐 어떤 자극제가 될까. 과연 ‘대권지형을 뒤흔들만한 개헌풍인가’라는 얘기다. 노무현대통령의 ‘개헌카드’가 예상된 시나리오이긴 했지만 예상외로 파급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노대통령의 ‘개헌’발의까지 치면 적어도 3~4개월 정도는 족히 시간을 끌 공산이 높다. 이런 판국에 대권주자들은 저마다 손익계산을 하느라 내심 속내는 타들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에게는 오히려 ‘개헌풍(風)’이 달콤, 살벌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다.
박 전대표는 여성정치인의 특수성을 고려, 정면 돌파하겠다는 행보다. “나쁜 대통령”이라는 다소 노골적인 표현까지 구사하며, 강하고 저돌적인 정치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개헌논의과정에서 가장 불리한 쪽은 박 전대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나름대로 저울추로 유·불리를 따져보는 형국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개헌추진이 가능하다면 한나라당의 대선구도는 이명박-손학규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인지 박 전대표의 한 측근은 “이번 대선 공약에서 개헌이 하나의 묶음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시기적으로 이번 정권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빠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명박 전서울시장은 개헌논의와 관련, 그 특유의 노련미와 우회적인 해법을 구사했다. 이 전시장은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봐야한다”고 응대했다. 직설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그만의 대권전략이다. 현정권과 굳이 각을 세울 필요까지는 없다는 입장에서다. 도리어 경제축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전시장 또한 개헌추진은 다음 정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박 전대표와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손학규 전경기지사 역시 개헌 추진에 반대하는 시각은 아니다. 다만 그 시기에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는 견해다.
사실 1월 들어 예고된 ‘개헌정국’은 고건 전총리,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의장 등 원외 대권주자들에겐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레이스다.
정 전의장은 그대로 당내 정동영파 30~40명 정도가 자리매김하고 있어 일정부분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긴 하다. 그런 이유로 정 전의장은 개헌추진을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 개헌 논의를 계기로 대중들의 관심 끌기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2진 후퇴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맞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반면 고 전총리 입장은 좀 다르다. 민주당, 열린우리당 몇몇 의원들과만 소통하는 동지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불리한 형국이다.
이런 탓에 고 전총리측은 “중도실용주의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신당에 더욱 탄력을 가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참에 개헌 논의가 진척되든 주춤하든, 고 전총리의 대권행보가 ‘개헌정국’에 파묻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과 맞물려 고 전총리가 세(勢)규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고 전총리 또한 정 전의장처럼 개헌 추진에는 굳이 반대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있다.
개헌정국이 불러온 파장은 과연 정치 판세를 뒤엎을 만큼 폭발적이냐, 아니면 여권의 대선형국을 굳히는 시간 끌기에 불과할 것이냐는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다.
하지만 개헌정국을 둘러싼 대권주자들의 입장, 견해차가 있는 만큼 향후 이들의 연대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어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 rogos0119@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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