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로에 선’ 안철수의 기호(棄湖)전략
[기고] ‘기로에 선’ 안철수의 기호(棄湖)전략
  • 김영필 편집위원
  • 입력 2017-12-01 17:06
  • 승인 2017.12.01 17:06
  • 호수 123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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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대선 데뷔 전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 호남 과감하게 포기하는 ‘기호 전략’ 유효

 
돌이켜보면 그의 데뷔전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프로야구 선수 송진우가 1989년 4월 12일 데뷔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만큼 충격적이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이슈로 서울시장 자리를 내동댕이친 오세훈 시장의 뒤를 이을 보궐선거에서 여론조사결과 50%의 지지율을 자랑하던 그가 겨우 5%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사람에게 흔쾌히 후보 자리를 양보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는 안철수였고, 그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 받은 사람은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이다. 그렇다고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에게 평생을 두고 갚아야 할 신세를 진 것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정을 잘 이끌면 그만이다. 그들 간의 부채 문제는 개인 간의 부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지금은 503호로 불리며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일합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부상하게 된다. 5년 전의 일이다. 현 여권 세력이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하면서 패배를 당연시할 알리바이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분연히 일어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희망은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안철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던 안철수가 지난 5년 동안 많은 정치적 패배와 좌절을 맛보았다. 물론 그런 패배와 좌절의 책임은 다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정치는 복합예술로서 우리사회에서는 가장 전문적인 영역인데 정치를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대중적인 영역으로 잘 못 인식한 이유도 크다.
 
정치를 너무 얕잡아본 지난 5년간의 안철수의 정치역정을 복기해 보면, 지금 그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할 방안도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패배와 좌절을 맛본 안철수라는 정치적 자산은 이미 자연인 안철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의 자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산은 공익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는 박근혜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대통령 후보 단일화 게임에서 일방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게 되는 주인공을 잉태한 것이 바로 2012년의 대통령선거였다.
 
결과적으로 야권 단일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에게 대선 패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세련되지 못한 후보 사퇴과정과 그 후의 선거과정의 그의 언동은 그를 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선 패배의 덤터기를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의 첫 번째 정치적 실패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일에 한국을 뜬 안철수는 다음해 4월에 실시되는 서울 노원병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다. 물론 대선 과정에서 부채를 떠안은 민주통합당이 자당의 후보를 사퇴시키면서 인위적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는 하였지만, 안철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이 충만한 시기였기에 그의 승리는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었다.
 
그의 원내 진입은 궤멸 상태에 처해 있던 야권 진영을 동요시켰고, 절망에 빠져 있던 일부 국민들에게는 서광을 비추는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지지자들은 자발적으로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창당 작업에 돌입했고, 그도 그러한 움직임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그는 타이밍을 맞추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다. 아직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한 고독한 햄릿은 그렇게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두 번째 정치적 실패를 맛보았다.
 
2014년 6월에는 제6회 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못지않게 동시지방선거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 선거다. 그가 지금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는 제3의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제1야당인 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국민적 인기와 지지가 그를 고무시켰다.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을 만드는 작업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연초부터 시작된 창당 작업은 속도를 더했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야 하는 선거에서 전장에 나설 후보자들이 그와 정치적 역경을 함께하기를 주저했다. 일대일 대결구도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된 상태로 분기탱천할 돈키호테형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소설 같은 정치를 꿈꾼 소설가의 세치 혀에 그는 무장해제된 채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우를 범했다. 세 번째 정치적 실패다.
 
‘호랑이 굴에 들어갔는데 정작 호랑이가 없다’고 허세를 부렸던 그는 세월호 참극에도 불구하고 제6회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이전까지의 정치적 실패와는 다르게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는 성적표가 제시되었다. 결국 그는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역사상 민주진보 진영의 야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직을 사퇴하게 된다. 네 번째 정치적 실패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에게는 없던 병이 생겼다. 바로 정치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조급증이 그것이다. 조급증은 중증이 되면 불치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통령병으로 악화될 수 있는 증상이다. 그런 와중에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은 18대 대선에서의 패배 책임을 극복하고 당의 대표로 정치적 복귀를 하여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의 증상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좌충우돌하는 그에게는 정치적 논리도 필요치 않았고, 대의명분과는 이미 오래전에 결별한 상태였다. 반 문재인이면 족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그를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당내에서의 일합을 회피한 그는 혈혈단신 광야에 섰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한 모 재벌 총수처럼 그는 시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엄연한 또 한 번의 정치적 실패였다. 다섯 번째 정치적 실패다.
 
2016년 초 이미 오래전에 제1야당을 떠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하던 천정배, 그리고 안철수 색깔지우기에 여념이 없던 더불어민주당을 자발적으로 떠난 일부 현역 의원들과 의기투합한 그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다. 그가 꿈에 그리던 제3의 정치세력 국민의당이 그것이다. 그에게 국민의당은 자신의 회사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국회의원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호남은 각자도생한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에 맞서기 위해서는 수도권에서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논리의 발상지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당내 중진들의 목소리였다. 참을 수도 없지만, 참아서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단호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리고 국회의원선거를 실질적인 승리로 이끌었다. 300석의 의석 중 38석에 불과한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의 정치적 비중은 그 의석 이상이었으며,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정치적 성공이었다.
 
그리고 지난 5월 뜻하지 않은 정치적 실패가 그를 엄습했다. 여소야대가 만들어 낸 정치질서로 박근혜 정권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 결과 박근혜 정권도 조기마감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19대 대통령선거 운동이 한창일 것이지만, 조기 대통령선거 결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9일 대선에서 그는 3위를 차지했다.
 
‘홍찍문’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내어 문재인을 상수로 선거운동을 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만약 문재인에게 민주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다면, 지지층이 협소했던 문재인에게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홍찍문’으로 자신을 2, 3위 경쟁을 하는 후보로 전략시켰다. 회복하기 어려운 여섯 번째 정치적 실패였다.
 
그는 이제 또 다른 실패에 도전하려 한다. 물론 그것이 실패로 귀결될지는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의 정치적 실패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의 지난 5년간의 정치역정은 하나로 일관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끊임없이 현실정치를 혐오하고, 진보적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으며, 보수친화적인 정치행동을 보인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보수 대통합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존재 이유이기도 한 반문재인 전선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 전제로 그에게는 짐이 되고 있는 호남을 과감하게 버리는 기호(棄湖)전략을 통해 몸집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호남도 얻고 보수도 얻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에게 두 번째 정치적 성공의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김영필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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