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사법파동’일어나나
‘4차 사법파동’일어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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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3-08-21 09:00
  • 승인 2003.08.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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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처음 시작, 그간 사법부 3차례 홍역 치러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사법부안팎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또다시‘사법파동’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사법파동은 세차례나 있었다. 1차 사법파동은 지난 71년에 있었다. 그해 7월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판사, 서기관 등 3명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했다.혐의사실은 판사들이 제주도 출장시 사건 담당 변호사로부터 왕복여비, 숙식비 등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 그러나 당시에는 법관이 외부출장을 갈 때 , 변호인이 그 비용을 제공하던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따라서 당시 시국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자, 검찰이 법원을 탄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리고 법원은 ‘영장 기각’으로 맞서며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사법권침해 사례 성명을 발표하고 집단 사표까지 제출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나서 수사중단을 지시하고, 대법원장이 수습방안을 제시하면서 파동은 일단락됐다. 2차 사법파동은 88년 6월에 발생했다. 소장판사 200여명은 당시‘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 대법원의 개혁과 반성을 촉구했다. 이 성명서는 “민주화가 본격화되고 있음에도 사법부는 아무런 자기반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대법원장 사퇴 등 법원 수뇌부의 개편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퇴진했고, 이후 정기승 대법관이 지명됐으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발생,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했다.그리고 지난 93년 일어났던 3차 사법파동의 주역은 강금실 현법무장관 등이 포함됐다.

박시환, 강금실, 김종훈 등 서울지법 민사 단독 판사 28인이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들은 건의문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보여 주었던 사법부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당시 판사들은 과거 사법부의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를 신랄하게 비난하며 사법부 전반에 걸친 과감한 개혁을 요구했다. 이같은 의견에 변호사 단체, 사법연수생들도 동조하면서 파문이 확산됐고, 결국 김덕주 대법원장이 퇴진했다.그리고 3차 사법파동 후 꼭 10년. 4차 사법파동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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