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13총선을 비롯해 지난해 실시된 6·13지방선거 및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등 굵직굵직한 선거가 끝나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권 장학생’ 명단이 오르내렸기 때문.하지만 지금까지 ‘권 장학생’의 실체나 명단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다. 장학금이 불법 정치자금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장학금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을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예단하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 그 수혜자들 명단 등은 일종의 불문율로 통하는게 우리 정치권의 현실.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그 실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그러나 현대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이러한 정치권의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한 각종 의혹 및 ‘권 장학생’ 명단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권 전고문이 현대로부터 조성한 자금이 200억원에 달하고, 이 자금중 상당액이 총선자금 등 정치비자금으로 유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검찰의 시각이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권 전고문의 당시 역할과 정치상황, 불법자금 액수 등을 고려할 때 총선자금 등 명목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4·13총선 당시 박빙의 승부가 치러졌거나 상대적으로 열세 지역이었던 수도권과 영남지역 후보들에게 자금이 집중적으로 지원됐을 것이란 관측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386 초·재선의원들과 일부 신주류 의원들이 ‘권 장학생’ 실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맞물려 있다.민주당 일부 당직자들 사이에선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정치인 치고 ‘권 장학생’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란 극단적인 얘기도 오가고 있다.최근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권 리스트’나 ‘권 장학생’ 등 괴문서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배경에는 정치자금에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의 현실이 잘 투영되어 있다. 또 출처불명의 괴문서 리스트에는 거물급 정치인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어 당분간 ‘권 장학생’ 실체를 둘러싼 논쟁은 하한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괴문서 리스트에 따르면 2000년 4·13 총선때는 민주당 후보 20여명이 ‘권 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다.
중진급인 N K H L씨 등이 권역별 책임자로 명단에 올라 있고, 386 의원인 L K의원, 신주류인 S L L의원, 중도파인 C K J의원, 낙선한 P H K W M씨 등이 리스트에 포함됐다.‘경선리스트’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경선리스트’는 지난해 경선에 나섰던 김근태 의원이 “권 전고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양심 고백을 한 이후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건과 관련해 얼마전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외에 다른 경선후보들은 이렇다할 불법 자금 수수 혐의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의 양심고백으로 다른 후보들에게도 불법 자금이 지원됐을 개연성이 높지만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어 그 실체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따라서 ‘경선리스트’ 실체 규명을 위해선 권 전고문의 고백이나 증언이 필수적이다.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권 전고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경선리스트’는 영원히 수면아래 묻힐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권 전고문이 ‘경선리스트’를 폭로할 경우 정국은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급 정치인들이 당시 경선후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선리스트’의 파괴력은 과히 메가톤급 태풍에 견줄만 할 것이다.정치권이 권 전고문의 구속과 향후 검찰 수사 추이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는 것도 이러한 메가톤급 태풍이 정국을 강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권 전고문의 구속 사유가 현대비자금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권 전고문이 여차하면 ‘경선리스트’ 등 X파일을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와관련, 권 전고문의 한 측근은 “권 전고문이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정치탄압이 계속될 경우 결국 폭발하지 않겠느냐”며 X파일 공개 가능성을 내비쳤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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