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공원은 국비(국가보훈처) 40억원과 지방비 22억원 등을 포함 총 64억3,200만원의 사업비로 조성되며 현재 부지매입과 설계가 완료됐으며 기념관 건축골조공사 등을 진행하며 46%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올해까지 확보돼야 할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아 박열의사 기념공원은 완공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문경시는 2003년에 8억원, 2004년에 5억5,000만원, 지난해에 8억2,000만원, 올해 9억2,700만원 등 모두 30억9,700만원을 확보했으나 전체 사업비 64억여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때문에 문경시는 뒤늦게 완공시기를 2006년 말에서 2년 정도 늦은 오는 2008년 6월로 연기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현재의 사업비확보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또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박열의사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과 쌍벽을 이루는 박열 의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후세인들의 산 교육장이 될 기념공원 조성이 계획기간내에 완공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예산지원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예산 확보에 어려움은 있으나 국가적 기념사업이 될 이 사업이 조기에 완공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1902년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서 태어난 박 의사는 17세인 경성고보 시절 3·1독립운동을 하다 퇴학을 당했으며, 일본에서 고학을 하면서도 조선청년들과 함께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저항 운동을 펼치던 중 1922년 일본황태자 결혼식에서 일왕부자의 암살을 기도한 혐의로 23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부인은 형무소에서 숨졌다. 박 의사는 해방 후에도 백범 김구 선생과 더불어 윤봉길, 이봉창 등 열사들의 유해봉안 추진위원장을 맡았으며 신조선건설동맹위원장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6·25 사변 3일만에 강제납북, 1974년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유해는 유언에 따라 문경에 묻혔다. 정부는 지난 1989년 박 의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올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고도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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