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의 연이은 청와대 압박 전략에 청와대는 몹시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정 대표는 지난 11일 검찰수사망이 좁혀오자 대선자금 200억원설을 흘려 청와대를 압박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문책론’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또 정 대표측은 청와대측의 반응을 살펴가며 제3 제4의 카드로 계속 청와대를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와관련,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정 대표는 결코 호락호락한 정치인이 아니다”며 “만약을 대비한 최후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처럼 정 대표와 그 측근들이 확전의지를 불태우며 청와대를 계속 압박하자 청와대측도 불쾌한 심사를 드러내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고 있다.
25일 윤태영 대변인은 “정 대표 본인의 진의와 다르게 주변에서 확대되고 과장된 얘기들이 너무 많은게 아니냐”는 말들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나왔다고 전했다.윤 대변인은 정 대표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면담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던 입장을 바꿔 면담 날짜가 22일이며, 문 수석의 요청이 아니라 정 대표 요구에 의해 면담이 이뤄진 것이라고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또 정 대표가 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청와대 문책론’을 들고 나왔듯이 청와대측도 정 대표를 직접 비난하지 않고 정 대표 측근들의 언론플레이를 문제삼는 등 극도의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청와대가 침묵을 깨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정 대표의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실제로 정 대표는 그동안 ‘음모론’을 앞세워 당내 세력 규합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와중에 김원기 고문을 비롯한 신주류 중진들도 굿모닝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동아일보에 실명 보도되면서 정 대표의 주장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비록 동아일보의 기사가 오보로 판명나긴 했지만 그 배후에 청와대 386참모그룹이 있을 것이란 이른바 ‘386음모론’이 수면위로 급부상하자 이들 신주류 중진들도 정 대표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25일 “검찰총장의 국회출석을 반드시 제도화하겠다”고 주장한 이상수 사무총장의 발언 배경에도 이러한 동병상련의 공감대가 묻어 있다.
신주류 핵심인 이 총장의 검찰 질타 발언으로 정 대표측은 모처럼 환한 분위기를 연출한 반면 검찰과 청와대측은 몹시 당황해 했다.이처럼 신주류가 정 대표 옹호론을 펼치고 있는 배경에는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특등 공신인 정 대표가 쉽게 무너지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 언젠가 자신들도 정 대표처럼 희생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을 것이란 분석.여기에 386참모진 등 청와대 친위세력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공감대도 이들 신주류를 뭉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청와대를 겨냥한 역공에는 구주류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구주류 중진인 정균환 원내총무는 전북 부안군 위도의 핵폐기물 처리장 건립문제와 관련해 정부정책과 노 대통령의 처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정 총무는 25일 “군민의 평화적인 유치 반대 집회를 경찰이 무차별 진압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 정부에서는 부안군수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나 하고 영웅시한다”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정 총무를 비롯한 구주류가 노 대통령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따라서 청와대측은 정 총무의 이같은 발언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으나 내심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여기에 정 대표와 그 측근들이 여차하면 또다른 핵뇌관을 터뜨리겠다며 확전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도 부담스럽기만 하다.특히 정 대표의 최종 결단이 임박해 옴에 따라 청와대측은 정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대표는 자신이 시사해 온 검찰 출두 시한(7월말)이 임박해 오자 지난 27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선친(정일형 박사) 묘소를 찾았다. 중대 결단을 앞두면 늘 해오던 관행이라 많은 취재진들이 그 뒤를 따랐다.하지만 정 대표는 검찰 출두 시점에 대해 “이달 말이라는 말이 있고 일부러 미룰 이유도 없지만, 동료나 당원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피력했다. 또 정 대표의 한 측근 의원도 “오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 재의와 고용허가제 법안 표결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날은 힘들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7월말 출두는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선친의 묘소를 참배한 다음날(28일) 정 대표는 유독 당심을 강조했다.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정 대표는 “민주당은 우리의 선배들이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시련과 만난(萬難)을 이겨낸 전통있는 정당”이라며 “민주당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에 대해 미래를 포기하고 과거에 집착하려는 것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분열없는 통합신당을 위해 노력하자”며 당직자들과 당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민주당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듯한 정 대표의 발언 이면에는 다각도의 전략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 대표의 ‘민주당 사수’ 전략은 분열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고 당내 지지기반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또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는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개인비리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는 굿모닝게이트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도 내포되어 있다.
이와관련, 정 대표의 한 측근은 “민주당 정통세력과 신주류 온건파, 중도파 등이 정 대표를 지지하는 중심 세력”이라며 “정 대표가 이러한 당심을 추스르고 그 힘을 등에 업는다면 청와대측의 음모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 대표는 이러한 민주당 사수 전략의 일환으로 조만간 김대중 전대통령 방문을 적극 검토하는 동시에 김원기, 김상현 고문 등 당 원로와 지인들도 두루 만나 의견을 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26년 정치인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선 정 대표의 마지막 승부수는 어떤 것일지, 또 그 승부카드는 그의 정치생명을 연장시켜 줄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andera10@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