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때 알고 물러섰을 뿐
물러설 때 알고 물러섰을 뿐
  • 이금미 
  • 입력 2007-01-24 13:56
  • 승인 2007.01.24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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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중 변호사가 털어 놓은 고건 대선 불출마 뒷얘기


고건 전국무총리가 2007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나선 서울을 떠났다.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애초 기자간담회 형식을 빌려 그간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 놓으려 했지만 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고건 대통령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섰던 그의 지지세력들의 반발이 심했던 탓이다. 1년 가까이 ‘범 여권’ 후보로 불렸던 고 전총리는 그렇게 정치권을 뒤로하고 국가 원로로서의 자리로 돌아서고 있다. 그의 불출마 선언에 앞서 등장했던 숱한 ‘의혹’을 그대로 남긴 채 말이다. 자연스레 정치권에선 고 전총리가 대선 출마를 접게 된 나름대로의 사연들이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사연은 언제나 ‘루머’와 ‘사실’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그 진위가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지난 18일 고 전총리의 오랜 지기이자, ‘미래와 경제’ 회장을 맡고 있는 이세중 현대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를 만나 ‘고건 대선 불출마’와 관련,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지난 7일 일요일,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고 전총리와 이 변호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대선 후보로서 모든 공식 일정을 중단하고 장고(長考)에 들어간 그때다.


“결정을 존중한다” 위로
당시 고 전총리는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드러난 낮은 지지율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국민의 요구, 즉 높은 지지율로 인해 대선전에 나서게 됐지만, 작금의 낮은 지지율 역시 국민의 평가라는 판단에서다. 고 전총리는 “이 시점에서 거취를 결정할 때가 된 게 아닌가”하는 속내를 털어놨다. 뭔가(정치 액션)를 취해 뭔가(대통령)를 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던 것인만큼, 자신을 필요로 했던 국민의 평가가 이처럼 낮다면 뜻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스스로를 향한 물음이었다.

이 변호사는 오랜 지기인 고 전총리에게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제 3자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또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여느 정치인은 지지율이 낮음에도 악착같이 뛰는 사람이 있지만, 고 전총리는 국민의 평가가 이러한데 계속해서 (대선을) 진행하는 건 국민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뒷골목, 채 50m도 되지 않는 거리, 앞뒷집에 터를 잡고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은 이날의 주제만큼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했다.

이 변호사는 이후에도 고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몇 번 자리를 함께 했다. 조찬 모임에서, 또 미래와 경제와 관련된 모임에서였다.

그러던 중 16일 아침, 고 전총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오늘 오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선 불출마를 발표한다”는 내용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고 전총리는 “나를 위해 애쓴 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변호사는 “결정을 존중한다”며 고 전총리를 위로했다.


한 자릿수 지지율 ‘충격’
이 변호사는 고 전총리와 경기고, 서울대 동문으로 3년 선배다. 또 집까지 가까운 탓에 식구들끼리도 터놓고 지내는 사이다. 게다가 동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던 ‘동숭포럼’의 멤버다. 한 마디로 고 전총리를 아끼는 전문가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고 전총리의 대선 도전 시기에 맞춰 창립된 ‘미래와 경제’ 회장을 맡고 있는 만큼 고 전총리와는 각별한 사이다.

이 변호사가 지켜본 고 전총리의 최근 심경은 이렇다.

“총리 퇴임 직후부터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지켜왔던 고 전총리의 지지율은 지난해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연초를 기해 각 언론사들은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를 발표했는데, 한 언론사는 고 전총리의 지지율을 한 자릿수로 발표했다. 여기에서 고 전총리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대선에 도전하는 후보에게 연말연초 지지율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안다. 지지율이 곧 국민의 요구이자 평가라고 받아들였던 고 전총리에게 이같은 결과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변호사는 고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까지의 논리적 흐름을 나름대로 정리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에 발맞춰 한나라당, 특히 영남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보수화하고, 한나라당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우려해 국민들이 자신(고 전총리)을 필요로 한다면 대선에 나서겠지만, 자신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낮게 내려진다면 굳이 대선에 도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이 변호사는 고 전총리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마뜩지 않은 감정도 내비쳤다.

“원탁회의 제안과 관련해, 동참하기로 했던 국회의원들이 여러가지 문제로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또 ‘AS(애프터서비스)’ 문제 등을 요구해 왔다. 국회의원들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 다시 말해 다음 ‘당선’이 목적이다. 거기에 따른 플러스 알파(차차기 총선)도 요구 대상이다. 고 전총리는 ‘현실 정치’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며 힘들어 했다. 현실 정치에 대한 환멸이랄까. 대선 불출마를 결정하기까지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흡기 염증 ‘폭음’ 불가
연초를 기해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고 전총리에 대한 다양한 ‘루머’가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또 불출마 선언 직후부터 구구한 해석과 함께 언론의 추측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먼저 ‘외압설’을 입에 올렸다. 이 변호사는 “고 전총리는 오랜 공직의 길을 걸어오면서 남보다 깨끗하게 생활하는 게 평소 몸에 밴 탓에,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면서 “대선과 관련, 벌어진 일련의 과정 역시 모두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외압설’은 전혀 근거 없다는 얘기다.

‘와병설’도 고 전총리를 둘러싼 루머 중의 하나다.

이 변호사는 “호흡기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건강은 문제없다. 요즘도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탕을 찾는다”고 했다.
한편, 연초를 기해 핵심 참모들과 ‘폭음’으로 복잡한 심경을 달랬다는 얘기도 있다.

이 변호사는 “호흡기에 염증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물론, 고 전총리의 일상사를 모두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은 이(호흡기 염증) 때문에 와인 몇 잔 마시는 정도”라고 했다.

이금미  nick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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