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는 기본, 월급 가불하고 연락두절까지”

‘현직 프로 추노꾼’ 자랑처럼···추노 행위 횟수 경쟁
근로기준법 악용하는 알바생들···온라인에 가게 비방도
알바추노는 아르바이트와 노비를 쫓는 내용의 드라마 ‘추노’(推奴)를 합성한 용어다. 아르바이트생(이하 알바생)이 아무 예고 없이 연락을 끊거나 잠적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다. 추노는 본래 ‘도망간 종을 찾아오던 일’을 뜻하는 말이지만 알바추노는 의미가 변형돼 ‘알바를 쫓는 자영업자’가 아닌 ‘도망간 알바’를 가리킨다.
물론 임금을 체불하고 휴식시간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등 노동력을 착취하는 고용주의 ‘갑질’ 행위에 견디다 못해 일을 관두는 알바생이 많다. 그러나 역으로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고용주를 곤혹스럽게 하는 알바생도 적지 않다.
“방학 철에
알바생 고용 안해”
고용주들은 알바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이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관두거나 잠수를 타는 경우가 많아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8월 알바천국이 고용주 21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주 10명 중 8명(79.6%)은 대학교 개강으로 알바생에게 사직 통보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고 답했다. 받았던 사직 통보 유형은 ‘면대면 대화’가 43.5%로 가장 많았고 ‘문자통보’ 37.9%, ‘무단퇴사’ 11.9%가 뒤를 이었다. 고용주 75.8%는 알바생의 갑작스런 사직 통보로 난처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당장의 일손 부족’ 79.5%와 ‘거짓말을 했다는 실망감’ 9.4% 등 때문이다.
용산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방학 철에 아르바이트 문의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알바생을 채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3~4개월 일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대다수가) 개강이 다가오면 ‘잠수’를 타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나는 다른 가게도 운영하기 때문에 점장이나 알바생에게 매장 관리를 맡기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바생에게 맡기지 않는다. 믿고 매장 오픈을 맡겼던 알바생이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 점장이 출근하는 오후까지 매장 문을 열지 못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소연 했다.
성동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B씨는 “가장 바쁜 토요일, 채용한 지 이틀 된 아르바이트생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 출근을 못 하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됐고 잘 다녀오라는 격려를 했다”면서 “다음날 출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르바이트생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자 없는 번호라고 들려왔다. 이틀 치 급여라도 주려고 했지만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알바추노’라며 근무지에서 도망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은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8월 사이 알바추노 관련 글이 1000개가 넘었다.
한 네티즌은 “현직 프로 추노꾼”이라며 “추노하는 데 이유를 찾지 말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카페 면접에서 모 의대 휴학생이라고 속이니 사장이 좋아하며 커피를 공짜로 줘 마시고 다음날 안 갔다.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알바를 5년 해봤다고 속여 채용됐는데 매니저 번호를 차단하고 출근을 안했다. 모텔에서 청소하는 알바를 하기로 했는데 방이 너무 더럽길래 은행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 왔다. ‘꿀잼’(너무 재밌다)이다”라고 글을 남겼다.
이 밖에도 ‘하루 만에 3번 추노했다’, ‘지금까지 추노 횟수 5회’ 등 누가 더 많이 ‘추노’ 행위를 했는지 경쟁하는 양상을 띨 정도다.
알바생들
책임‧의무 소홀
무단결근 등 불성실 근무를 하는 알바생이 있어도 해고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주가 해고 30일 이전에 알바생에게 예고하거나 즉시 해고절차를 밟을 시 한 달분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을 악용하는 알바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동구 대학가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C씨는 “매번 지각을 하고 고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 때문에 눈여겨보던 20대 알바생이 있었다. 하루는 알바생이 무단으로 결근해서 해고하겠다는 말을 꺼냈더니 법대로 해보자는 말이 돌아왔다”면서 “이후 알바생은 고용노동부에 신고했고 나는 벌금을 물었다. 상황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노동부는 알바생만 피해자 취급했다. 과연 이런 상황을 보고도 알바생만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알바생들은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나 유명 일자리 알선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게를 욕하는 글을 적어놓기도 한다. 인근 가게 업주들도 피해를 본 사례들이 많다”며 “잠수는 기본이고 월급을 가불해 달라고 했다가 연락두절이 되는 경우도 적잖다. 이런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젊은 사람들을 채용하기 꺼려진다”고 탄식했다.
고용주들은 알바생의 인권과 권리 구제를 위한 제도와 단체는 많아지는 반면 자영업자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창구는 마땅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낮은 임금 등 노무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알바생이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이란 신분 자체가 아직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절실하게 구할 생각이 없다는 점과 알바가 저임금 일자리이고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끔 하는 근무환경이라는 점 등이 겹쳐 알바추노 현상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노무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 않아 알바생이 책임이나 의무를 소홀히 하고 근로 윤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알바는 또 다른 직업 체험이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임금도 적고 노무관리나 인력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젊은 세대들이 알바를 통해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얻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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