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횡령·음주 폭행까지’ 고삐 풀린 국회 사무처
‘성추행·횡령·음주 폭행까지’ 고삐 풀린 국회 사무처
  • 권녕찬 기자
  • 입력 2017-09-15 19:18
  • 승인 2017.09.15 19:18
  • 호수 1220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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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 중의 甲’ 국회 공무원…등잔 밑이 어두운 국회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공무원 사회에서 ‘갑’으로 꼽히는 국회 공무원들의 잇따른 비위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정의의 기본 토대인 법을 만드는 곳에서 최근 성추행, 횡령, 음주 사고 등이 연달아 터지며 공직 기강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해당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 입법고시 출신 고위직 공무원인 데다 사건 이후 감사도 허술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회 사무처 내 ‘카르텔’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특성상 대다수의 시선이 국회의원에 쏠린 탓에 이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소홀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성 비위·공금 유용·술자리 폭행 사건 잇따라
지난 5년간 4-5건이었으나 올해 상반기에만 7건
슈퍼갑 국회 공무원, 감시 사각지대·고시 출신 ‘카르텔’ 지적
“국회도 국정감사 세게 받아야”…개혁 소위원회 설치 제안도

 
국회사무처는 법을 다루는 곳인 만큼 어느 공직 기관보다 엄격한 공직 기강이 요구된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지원하고 국회의 행정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1948년 제헌국회 때 설립된 기관이다.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와 함께 국회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사무처 소속 국회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의 법률안이나 청원 등의 접수·처리에서부터 각종 회의나 예산결산 심사, 국정감사 지원, 외교활동 지원까지 의원들의 입법 및 의정 활동의 핵심적인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사무처는 임기 2년의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국회 사무총장이 이끈다. 하지만 법안 실무 과정에서 ‘숨은 실세’는 따로 있다. 국회 각 상임위에는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을 필두로 전문위원(2급), 입법심의관(3급), 입법조사관(3~5급) 등의 조사관 그룹이 있는데, 바로 19명의 수석전문위원들이 숨은 실세라고 불린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모든 법안을 미리 검토한 수석위원들의 보고서를 먼저 본 뒤 법안을 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국회법(58조)에 안건을 심사할 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시작하라’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법안의 70~80%가 수석위원들의 보고서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렇듯 각종 법안과 행정 사무에 핵심 역할을 하는 국회 사무처가 최근 성 관련 비위 사건과 술자리 폭행 등 사건으로 공직 기강이 도마에 올랐다.
 
비위 사건 뒤늦게 알려져
‘숨은 실세’ 수석위원 연루

 
숨은 실세로 꼽히는 수석전문위원들이 올해 잇따른 성추행 사건이나 공금 횡령 사건에 모두 연루됐다. 국회 사무처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한 상임위의 회식 도중 노래방에서 수석전문위원이 5급 여성 사무관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이 지난달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4월엔 한 상임위의 수석전문위원 포함 직원 3명이 출장비를 상습적으로 횡령한 혐의가 올 초 회계감사 결과 드러났다.
 
더 큰 문제는 성추행 사건 피해 사무관이 국회 감사관실에 알렸으나 당시 해당 수석위원은 이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피해 여성 사무관이 다른 부서로 전출됐으며, 해당 수석위원은 7월 정기 인사에서도 별다른 인사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횡령 사건 관련해서도 해당 수석위원만 다른 상임위로 옮겼을 뿐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달 언론에 의해 알려지자 국회 사무처는 그제서야 본격 감사에 착수했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회계질서 문란,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수석전문위원 2명을 같은 달 22일 면직 처리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중순에는 한 상임위의 회식 자리에서 직원 간 음주폭행 사건이 일어나면서 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해당 술자리에서 2급 심의관이 4급 서기관의 행동을 문제 삼아 3급 행정실장에게 술잔을 던졌고, 술잔에 머리를 맞은 행정실장은 인근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공직 기강 해이 ‘질타’
빙산의 일각 목소리도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회 공무원 비위 현황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 해 평균 4~5건이었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7건에 이른다. 국회 공무원 비위 사건이 잇따르자 운영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달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에게 사무처 직원들의 공직 기강 문제를 질타했다.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국회 사무처에서 성추행과 횡령 등 뒤숭숭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성교육하고 간부 교육을 하고 있지만, 묵인과 재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이은권 의원도 “계속 사건이 터지고 있다”고 질타하며 “진상조사가 늦어지는 부분도 (문제가 재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책임을 통감하고 파악을 뒤늦게 한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사무처 안팎에선 여태까지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국회 고위직 공무원들이 평소 말단 남자 직원을 이용해 여직원을 상대로 회식자리를 만든 다음 교묘하게 성희롱을 일삼는 다는 소문도 있다.
 
사무처 기강 해이 문제는 감시와 견제 기능이 취약한 데서 오는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부처에 언론사의 취재진이 드나들 듯 국회에 많은 언론사들이 드나들지만 이들의 카메라는 국회 업무 특성상 주로 의원들을 비출 수밖에 없다. 사무처 직원들은 언론의 조명에서 한 발짝 비켜 있는 셈이다.
 
사무처 내 입법고시 출신 카르텔이 자정 능력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입법부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인 입법고시는 한 해에 10~30명 이내로 뽑기 때문에 그들만의 배타적 유대감이 높아 문제가 발생해도 쉬쉬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사무처에 기수 문화가 형성돼 있고, 입법고시 출신끼리는 서로 좀 봐주는 그런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근무 특성상 사무처 직원들은 지방도 거의 안 가고 국회 안에서만 20∼30년을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서열 의식이 강하고 선후배 관계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점은 문제 발생 시 온정주의로 흐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국회 사무처 내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국회 숨은 실세라 불리는 상임위 수석전문위원 19명은 모두 남성이다. 지난 7월25일 사무처가 수석위원 8명에 대해 인사 발령을 냈으나 여성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고, 인사이동과 관련 없는 기존 인사를 더하면 19명 모두 남성이라고 여성신문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한편, 국회 사무처는 폐쇄적인 기수 문화와 감시 사각지대에서 각종 비위 사건이 잇따르자 기강 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최근 주요 상임위 간부회의에서 “내부 회식을 자제하라. 또 비슷한 사건이 생기면 부서장에게도 책임을 묻고, 강력 징계조치하겠다”는 지침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선 방안도 ‘늑장’ 지적
외부 견제 필요 목소리

 
우 사무총장은 지난달 물의를 일으킨 2명의 수석전문위원에 대한 면직 처리 방침을 밝히면서 “이번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제기된 우려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국회 사무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신속하고 가시적인 국회 차원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당시 사무처는 ▲감사관의 개방형 직위 전환 ▲성평등 옴부즈만 설치 및 상담 전문화 ▲회계 및 성 관련 교육 가시화 ▲비위·징계 관련 규정 개선 등의 조치를 포함해 금주 내로 별도의 TF를 구성해 내부 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절차에 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주 내로 설치하겠다던 별도의 TF는 3주가 지난 12일에야 구성됐다. 사건 이후 숨기기 급급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사무처가 이번에도 쉬쉬하며 늑장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사무처는 이에 대해 “4명의 외부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차원의 외부 개혁 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도덕성 잣대도 다른 어느 조직보다 엄격해야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사무처에서 불법과 일탈이 끊이지 않아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인은 사무처가 이미 견제, 감시기능이 매우 약하고 자정기능이 없는 그들만의 조직이자 기득권 조직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라며 국회 운영위원회 산하에 사무처 개혁 소위원회 신설을 제안했다.
 
국회 사무처의 공직 기강 문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한 야당 의원실에서는 소위 실세 상임위 중 한 곳을 집중해 횡령 등 공금 유용 흔적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그동안 국회사무처가 제대로 감시·견제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며 “이번에야말로 갑 중 갑인 사무처에 대한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국정감사에서도 사무처,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등 정작 국회에 대한 국감은 형식적이고 요식 행위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입법부 전체에 대한 국감은 통상 두세 시간 정도로 끝나 감사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국회도 국정감사 때 보다 강도 높은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일 주러시아 대사에 내정돼 사무총장직을 내려놓는 우윤근 총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사무처 등이 행정부처럼 몇 천억 원짜리 사업을 하는 집행기관이 아니라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도와주는 기관인 데다, 의원들과 늘 함께 일하다 보니 국감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못 느낀 것 같다”며 “어쩌면 국감보다 내부 감사가 더 필요한데 총장이 된 후 보니 문제가 좀 있었다. 국회도 좀 더 세게 국감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우 사무총장이 주러 대사에 내정됨에 따라 차기 국회 사무처를 이끌 인사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4일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김교흥(57) 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후임으로 이어받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김 비서실장의 내정은 우 총장의 아그레망(주재국의 임명 동의 절차) 관계로 다음 달에야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 비서실장은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인천 서구강화갑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유치특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국회방문단장, 인천시 정무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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