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겠느냐”. 지난달 18일 구속수감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남긴 시구 한 구절이다.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마감한 특검팀이 남긴 유형의 성과는 박전실장과 이기호 전경제수석, 이근영 전금감위원장의 구속이 대신하고 있다. 햇볕정책 중심에 서 있었던 이들 3인방은 국민의 정부 퇴장과 함께 대북송금 의혹 특검수사라는 엄청난 복병을 만나 구속수감되는 불행을 맞게 됐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 중인 이들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전수석은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황인 것으로 면회를 다녀온 정치권 인사는 전하고 있다. 또 박전실장과 평소 친분이 두터워 면회를 다녀왔던 민주당 박양수 의원은 “박전실장이 자신이 150억원을 받았다는 이익치의 진술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하더라”며 박전실장의 근황을 전했다.
박전실장의 면회를 다녀왔던 민주당 박양수 의원은 착찹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안고 국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박전실장의 건강도 걱정되고, 격려차 면회를 다녀왔다는 박의원. 박전실장의 부인과 함께 한 면회는 15분간 이뤄졌다. 다행히 박전실장이 수감직후와는 달리 식사도 잘하고, 건강한 모습이어서 안심됐다고 박의원은 전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150억원 수수의혹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건강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이뤄 얼굴이 푸석해 보였다고 한다. 특히 150억원 수수의혹과 관련, 자신에게 150억원을 줬다는 이익치 전현대증권 회장의 진술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박의원은 전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면회당시 박전실장이 박의원에게 전한 말.
“도의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책임질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과업인 남북정상회담을 실정법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통일문제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습니다. 개인문제가 아니고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또 다시 나에게 이런(남북정상회담) 임무가 주어진다고 해도 기꺼이 할 것입니다.”박의원에 따르면 박전실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당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DJ의 건강문제를 생각하면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전해졌다. “무엇보다 김전대통령의 건강이 가장 크게 걱정됩니다. 이번 일로 심기가 몹시 불편하실 텐데. 저야 괜찮지만 김전대통령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실까봐 밤잠이 오질 않습니다.”최근 정치권 화두로 불거진 현대 150억원의 뇌물 수수설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돈에 대해 구애를 받지 않고 살아 온 사람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 돈을 받겠습니까. 내게 돈을 줬다는 이익치의 진술은 잘못된 것입니다. 150억원? 150원도 안 받았습니다.”당초 박의원은 150억원 부분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박전실장을 면회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전실장이 부인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자 안심했다고 한다.
이기호 전수석과 임근영 금감위원장 면회는 민주당 김성호 송영길 김태홍 의원이 다녀왔다. 하지만 이전수석은 건강이 안좋아 면회가 안됐다고 한다. 실제로 이전수석은 대북송금 조사가 이뤄지고 수감된 이후 줄곧 몸이 안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내 햇볕정책 지킴이(햇볕정책 3인방으로 잘 알려진 이들 의원)들은 평소 대북문제를 특검으로 다루는 것 자체를 현정부의 엄청난 실수라고 비판해 왔던 터. 김성호 의원은 “특검법에 의해 구속된 이기호 전청와대 경제수석과 이근영 전금융감독위원장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 이들은 도주나 증거를 인멸한 우려가 없기 때문에 충분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할 수 있다”며 “대북송금문제는 권력형 부정부패나 비리가 아니고, 민족적 차원에서 이뤄진 정치적 결단과 남북평화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사법적 재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김의원은 기자와 만나 “특검은 대북송금수사로 남북관계 발전과 6·15 정상회담 정신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남북관계 발전을 훼손할 경우 특검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근영 전위원장을 만나고 온 김의원은 “이 전위원장은 안경 쓴 초췌한 얼굴에 우리를 맞이했다”며 “보고 있는 우리의 가슴도 아팠다”고 말했다. 특히 건강이 나빠 면회조차 어렵다는 이전수석의 근황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메였다고 한다. 이 전위원장을 만나 “주로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자 김의원은 “건강상태를 물었고,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을 한 것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격려해 드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위원장은 “자신은 괜찮지만 대통령이 상처받으셨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당당하게 재판에 나설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했다는 전언.
구속된 이들 3인은 한결같이 이 문제와 관련,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전대통령에 대한 충정심도 여전했다. 수감된 자신들보다 김전대통령의 건강을 더 걱정한다고 한다. 면회를 다녀온 한 의원은 이들의 충정심을 보고 ‘김 전대통령은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모든 것은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70일간 이뤄진 대북송금 특검은 3명을 구속 기소하고 5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마무리됐다. 그리고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과연 재판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숙 iope74@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