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은 누구의 지략인가
탄핵정국은 누구의 지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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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4-01 09:00
  • 승인 2004.04.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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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란 말이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는 않다. 사색당파 싸움으로 지새운 조선왕조 5백년 역사에서 정권의 향방은 오로지 탄핵 정국의 성사와 그 승패에 달렸었다. 승패 여부는 물론 전제주의 주권자인 군주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가름될 수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탄핵의 명분이 뚜렷하고 당파끼리 뜻을 모아도 임금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동안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야권의 탄핵 목소리는 측근 비리가 꼬리를 물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고 총선 정국이 더욱 가파른 길로 들어서면서 설마 했던 대통령 탄핵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러나 결과는 여론을 무시한 야 3당의 야합과 폭거라는 주장이 지금으로선 지배적인 것 같다. 탄핵안이 발의 될 때까지의 대통령과 야당의 대립 양상에서는 분명히 노대통령의 오만을 나무라는 쪽으로 민초가 바람을 타는 듯했던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탄핵 가결까지는 아니라도 한번쯤 노대통령의 절제하지 못하는 언행에 대해 경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야 3당의 속사정이 공천 탈락의원들의 거센 반발 등으로 사분오열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던 터라 탄핵소추안의 가결이 산술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가미가제’식 형국 그런데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불 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고, 특히 기자회견을 지켜본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투신자살한 충격적인 사태는 급기야 대통령 탄핵 정국에 태풍을 몰고 왔다. 탄핵을 반대했거나 주저했던 세력들이 ‘제갈 공명’ 아닌 ‘남상국’ 전사장이 불러온 동남풍에 떼밀려 허겁지겁 탄핵 찬성 쪽으로 집결했다. 결국 남 전사장이 목숨을 버리면서 노대통령을 부수는 ‘가미가제’식 형국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래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되는 순간은 여소야대 정국이 그려 낼 수 있는 극단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후폭풍이 몰아치고 야권의 등등했던 기세는 1일 천하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몰아친 탄핵 정국의 역풍은 가히 제갈 공명이 동남풍을 빌려 몰락 직전의 소수 병력으로 적의 수십만 정예군을 격파했던 것과 견줄 만한 것이었다. 지지층 재 결집과 지지율 상승효과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숨 가쁘게 상향 곡선을 취하다 탄핵 일주일 만에 20% 이상이나 상승했는가 하면, 지난 대선 때의 노무현 지지층을 더욱 단단하게 재 결집시킨 바람몰이 효과는 틀림없는 제갈 공명의 환생을 느낄 정도였다. 다시 또 역풍의 역풍을 우려해서 열린우리당이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동남풍의 자제를 요청하는 모습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지금 야권에선 노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자책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탄핵 바람을 일거에 잠재운 거센 역풍의 진원지가 방송사였다고 지목해서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끝났다. 선거 결과야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 상태로는 선거도 치르기 전에 야권의 지리멸렬이 걱정될 지경이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노대통령이 민주당 죽이기에 나섰다고 판단해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결행한 사활을 건 한판 승부는 이겨 놓고서도 끝내는 그 이긴 것으로 해서 민주당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야권 지도부의 서툰 정치력 탓이라는 내부 지적에 발끈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정치를 포기하고 전쟁을 시작 한 마당일 텐데 세 불리한 쪽이 동남풍을 부른 제갈 공명의 전략을 생각해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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