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에 조기 유학을 떠난 초등학생 수가 7백여 명에 이른 것이 작년 한 햇 동안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무려 3천여 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식에게 첨단 과학 문명을 익히고 도약하는 21세기 세계화에 낙오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부모 마음을 나무라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이 땅의 자식들이 넓은 세계로 나가서 시야를 넓히고 탁월한 지식을 비축하여 조국의 미래를 대비한다면 이 보다 국가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조기 유학이 내자식 만큼은 조국 대한민국이 쏟아내는 탁류에 물들지 않고 보다 맑은 사회에서 밝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부모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나라의 앞날은 한마디로 절망이다.
나라 교육 시스템을 믿지 못해 학교 수업 보다는 학원 강의와 고액 과외에 치중해야 하고 그러자니 비싼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엄마들의 탈선까지 빚어지는 사회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지 않다. 말로는 인성교육, 전문성교육을 강조하고 실상은 입시지옥을 만드는 나라, 그렇게 해서 악착 같이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입사원서 한 장 낼 수 없어 청년실업이 방치되는 세상에서 자식 낳기도 겁이 날 것이다. 겨우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이제 30대 명퇴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고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정치부터가 목불인견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것저것 내다 팔아서라도 자식들 도피처만큼은 마련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일 게다.
조기 유학 도미노
때문에 조기 유학의 도미노 현상은 불가피할 전망이고 따라서 국민 계층 간 위화감은 더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떠난 조기 유학파들이 훗날 조국에 돌아오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질 것이 뻔하다. 그 가운데는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가꾼 엘리트 그룹이 생겨 날 것이고 다르게는 엉덩이에 뿔난 못된 송아지가 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걸핏하면 신사참배문제로 우리의 자존심을 긁고있고 중국은 옛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민족혼을 모으고 일깨우기 위해 간헐적으로 의도된 정치 쇼를 벌이고 턱없는 억지까지 부린다. 그 반면에 우리의 역사관은 어떤가. 그들이 집적거릴 때마다 대책 없이 냄비 끓듯 하고 나면 얼마 안가 또 무신경해지고 만다.
교훈은 역사가 만든 것
내 나라 역사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망각하고 닥치는 대로 막 살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오류를 답습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여 잘못된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해외유학 가서 그 나라 역사를 배우고 제 아무리 그 곳 첨단 문명을 익혀도 내 나라 역사를 모르면 민족혼의 결여로 조국에 보탬 보다는 자신의 이익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국가가 나라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국민이 뚜렷한 역사관을 갖지 못하면 지식인 사회의 이기주의는 더욱 집요하고 님비 현상도 갈수록 첨예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설문 조사에서 전문대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세종대왕이 고려 때 왕이었다는 대답이 적지 않았다는 기막힌 보도를 본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 상당수가 서울 사직동에 있는 사직터널을 밤낮 없이 지나면서도 사직동으로 이름지어진 까닭과 유래를 모르는 것으로 답했다고 한다. 조기유학도 좋고 온갖 과학적인 교육시스템도 마련해야 하겠지만 나라의 역사와 전통교육을 간과하거나 도외시하는 교육현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지어서 백년대계를 꿈꿔보겠다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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