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민단체 功 인정해 주지 않는다”

약 10년간 지속된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결실 맺었지만 ‘글쎄’
“문화재 찾으려는 시민단체의 역할,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
- 문정왕후‧현종 어보 환수의 배경은?
▲ 사실 (시민단체의) 반환운동으로 되찾은 것이다. 다른 문화재와 다른 점이 정부 간 협상이나 기증‧매입 등을 통한 것이 아닌 (어보를) 되찾아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승리의 결과물로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난 2009년에 문화재 반환 조사차 뉴욕에 방문했다.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문정왕후 어보 반환의 결정적인 단서인 ‘미 국무부 문서’를 찾아냈다. 6.25전쟁 때 미군이 서울에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한 조사기록이다. 거기서 조선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왕과 왕비 어보가 47개나 약탈당했다는 양유찬 전 주미대사의 분실신고 기록이 있었다. 이러한 기록을 공식문서로 확보하고 자료 조사를 끝낸 2011년부터 본격적인 반환운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옥새가 오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가졌던 옥새 9점, 시애틀 미술관에서 돌려받은 덕정어보 1점, 이번 문정왕후‧현종 어보 등 총 12점이 갑자기 2년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왜 이렇게 옥새가 오고 있을까. 그건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분실신고 기록만 가지고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환을 요청하려는 국가에게) 법률적인 논증을 해야 한다. 이번 어보 반환에서 제가 내세운 논리는 3가지다. 첫째는 한국 정부의 분실신고, 즉 양 전 대사가 미 국무부와 했던 전화통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 또 양 대사가 볼티모어선이라는 신문기사에 이와 관련한 인터뷰를 했던 점. 둘째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화재는 양도가 불가한 것으로 ‘불융통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국가가 이와 관련된 문화재를 팔 수가 없으니 양도나 매매로 취득할 수 없는 문화재라는 점. 셋째로는 미국 연방법 2314조다. 5000달러 이상의 문화재는 반드시 세관에 이민국 신고를 거쳐야 한다는 법이 있는데 문정왕후 어보는 이런 기록이 없다. 그러므로 불법적으로 밀수되거나 유통됐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3가지가 중요한 논거로 작용했으며 이것을 가지고 2011년 LA카운티 박물관에 이야기를 했다. 그 자료를 LA카운티 박물관 측 슈퍼바이저가 받아들이면서 반환 결정을 내리게 됐다. 다른 옥새들도 세 가지 논리가 작용해 반환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비웃음이었다. 시민단체들의 반환운동은 시작할 때 정부나 학자, 관료에게 비웃음을 받는다. 반면 성공하면 우리의 ‘공’이 아니다. 정부나 힘 있는 자들은 본인들이 (반환)했다고 밝힌다. (국가는 시민단체의) 반환운동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 이번 어보 환수에 가장 큰 도움이 됐던 사람과 단체는?
▲ 2009년부터 2013년도까지 자료조사 과정에서 주로 한국과 미국 불교계의 네트워크들이 재정적인 후원을 많이 해주고 (문화재를) 같이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또 2013년에는 안민석 의원을 만났다. 2013년 4월 안 의원이 4~7월까지 LA에 두 번 방문해서 반환운동을 함께했다. 이후 ‘문정왕후 어보환수촉구 대한민국 국회발의안’도 발의해 줬다. 물론 통과는 안 됐다. 어찌됐든 선언적인 의미가 있었다.
문정왕후 어보와 함께 반환된 현종어보는 ‘KBS시사기획 창’ 제작진이 문정왕후 어보를 중심으로 미국 내 한국문화재를 기획취재하면서 존재가 밝혀졌다. 제작진 등은 LA카운티 박물관에서 박물관 측이 로버트 무어라는 사람에게서 문정왕후 어보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그 것은 이미 밝혀진 내용이었지만 추가로 로버트 무어를 실제로 만나 어보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정왕후 어보 반환 추진 과정에서 현종어보의 존재가 나온 것이다. 이들의 취재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면담신청을 지속했다. 그 결과 1‧2차에 걸친 반환 협상이 있었다.
협상의 계기로는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위한 백악관 10만 청원 운동을 진행했는데 6138명의 시민들이 서명해 줬다. 10만 명이 되진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성원해 준 중요한 성과로 볼 수 있다. LA카운티 박물관 측에서는 이를 위중하게 여겨 서면을 보내왔다. 슈퍼바이저의 면담 허락과 도난품의 증거가 확실하면 돌려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2차면담 전 슈퍼바이저를 만난 자리에서 앞서 말한 3가지 논리 등을 주장하며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명백한 미국 법령위반이기 때문에 행정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때쯤 우리 정부(문화재청)에서도 미국검찰 측에 공식적으로 수사요청을 진행했고 문화재청의 노력도 있었다. 결국 우리의(시민단체) 요구를 정부에서 받아들여 공식적인 수사 요청을 했다는 것이 반환 요청에 이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다.
- 현재 문화재청의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점과 조언 사항이 있다면.
▲ 문화재청은 문화재 반환운동에 대해 관점을 바꿔야 한다. 문화재청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라는 단체를 지난 2012년 설립한 뒤 5년간 기증‧매입을 제외하고는 싸워서 되찾은 문화재가 하나도 없다. 또 앞으로 어떤 문화재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도 지정되지 않았다. 또 문화재를 찾으려는 시민단체의 역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된다. 그래야 밑바탕이 돼 (문화재 반환) 성공에 이를 수 있게 된다. 특히 문화재 반환에 성공하면 자신들의 공로로 탈바꿈하는 자세는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두 어보의 반환은 아주 좋은 사례다. 시민단체가 반환운동을 하고 문화재청이 거기에 반응해 검찰 수사를 요청해 줬다는 측면이 고무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런 모범적인 사례인 만큼 시민단체들의 반환운동의 평가 역시 모범적으로 해 줬으면 한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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