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 - 정경유착] 권력 당해낼 기업 없어… 윗물부터 맑아야
[적폐 청산 - 정경유착] 권력 당해낼 기업 없어… 윗물부터 맑아야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7-06-23 17:24
  • 승인 2017.06.23 17:24
  • 호수 1207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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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왼쪽)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안 간담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새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가 강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을지로위원회 성장의 주역인 우원식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정경유착과 재벌 특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등 ‘적폐 청산’을 내세운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재벌 가운데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새 정부의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난 수십년간 대선 때마다 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러나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 개혁,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까. 일요서울은 재벌·적폐 청산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번 호는 정경유착이다.

특별조사위 가동 촉각, 4대강 자원외교 등 예상
문 대통령 “유착 고리 끊어야 경제 살릴 수 있어”

정경유착은 겉으로는 기업과 권력의 단순한 ‘윈-윈’ 전략으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폐해가 크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과거 재벌들이 그룹의 덩치를 키우고 특혜를 얻어내기 위해 정권과 유착했다면, 최근에는 경영권 세습을 위해 정권에 줄을 대는 방식으로 정경유착의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또 기업이 상품 경쟁력을 위해 원가절감과 기술개발에 쓰여야 할 돈을 권력에 바쳐 해결하면서 악습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정경유착을 늘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4자방’ 비리 재조명 될까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다. 그 중에서도 정경유착 근절을 1순위를 꼽는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30대 그룹이 올해 들어 현재까지 임직원 1만4000명을 줄였고 절반이 넘는 16개 그룹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감소했다고 한다. 극심한 불황에 기업들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초긴축 경영에 들어가 있거나 들어가야 할 판이다.

하지만 경영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비영리재단에 수십억씩 출연해 그 배경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민원성현안 해결 때문에 정치권력과의 협약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로도 지적되면서 꼭 진상을 밝혀야 된다는 주문도 이어진다.

또 문 대통령은 지난 서울 신촌 유세에서 “최순실을 비롯해 국가권력을 이용해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은 국가가 모두 환수하겠다”며 “이명박 정부에서의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직접 겨냥해 ‘부정축재 재산 환수’ 원칙을 세우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등 이른바 ‘4자방’ 비리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4대강 사업의 불법성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불거진다면 ‘보 철거’와 같은 정책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세습 문제가 정경유착 비리의 트렌드가 된 만큼 장기적으로는 재벌의 경영 세습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상적인 현행 상속제도의 규제를 피해 3대 이상을 넘어 경영권을 넘기려다 보니 재벌들이 횡령이나 배임 등 위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달 대선 출마 회견에서 “재벌 3세 경영세습을 금지하고 재벌 독식 경제를 개혁하겠다”며 “기업 분할, 계열 분리 명령제를 도입해 재벌의 불공정거래와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를 막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근절 중요성 재차 강조

전문가들도 정경유착 근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 3월 수사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의 핵심 대상은 국가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된 국정농단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 고리인 정경유착”이라고 밝혔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도 “권력과 재벌의 유착으로 국민의 세금과 중소기업의 부를 전횡하는 적폐는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를 보면 30대 재벌의 자산총액이 국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기준 90.4%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열린  ‘국민성장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3차 포럼’에 참석해  “재벌 개혁 없이는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며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우리 경제를 살리고, 국민 모두 잘사는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선된 직후에도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정경유착의 ‘기원’이 워낙 오래됐고, 그 원인도 정치·경제제도에 폭넓게 기인한 만큼 단기간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재벌기업의 경제활동에 국가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실정상 당장 재벌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금지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막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어쨌든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경유착의 발단이 된 박정희식 개발 패러다임이 종말을 앞두고 있다.

정경유착 근절을 요구하는 여론도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이 재벌개혁에 나설 ‘골든타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그동안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온 정경유착의 뿌리가 현 정부에서 끊어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이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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