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 빼는 ‘한국경영자총협회’…文정부 반박 보고서 논란
진땀 빼는 ‘한국경영자총협회’…文정부 반박 보고서 논란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7-06-02 19:17
  • 승인 2017.06.02 19:17
  • 호수 1205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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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정부 대선 공약 분석·비판…“정식 보고서 아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작성한 ‘신정부 대선공약  분석 및 경영계 의견’제하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건에는 새 정부의 경제 공약을 일자리·노사 문제·경제·복지 분야 등 30개 세부 항목으로 나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논란 직후 이 문건은 자체 폐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경총 측은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식 보고서가 아니라 내부 실무진이 데이터를 정리한 자료인데 마치 회의에서 검토된 것처럼 외부에 알려져 당혹스럽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과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은 전례가 있어 이번 파문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급 ‘1만 원 인상’시각에 ‘노동시간 기본 원칙 훼손’ 주장 온도차
경총 “실무진 의견 자료, 협회 차원에서 검토한 바 없다” 진화 나서

복수의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 문건은 45페이지 분량으로 현 정부 공약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문건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 형태의 경우 기업의 자율이 중요하다는 걸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해고 요건 강화와 같은 고용 경직성을 높이는 조치는 기존 일자리마저 줄일 위험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문건은 경제단체협의회의 사무국 역할을 맡고 있는 경총에서 작성했다. 경제단체협의회는 경총 등 경제 5단체와 75개 업종단체, 15개 지역단체가 가입돼 있는 조직이다.

최초 보도한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문건에는 새 정부 정책에서 뽑아낸 ▲일자리(12개 항목) ▲노사관계 분야(8개) ▲경제(6개) ▲복지(4개) 등 30개 항목에 대한 분석과 반론, 대안 제시로 구성돼 있다.

정부 공약과 입장차

새 정부는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시급 1만 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가구 생계비도 포함하려고 한다. 재계는 펄쩍 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견해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낮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15년간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올라 영세·중소기업이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최저임금에 가구생계비를 포함하면 ‘임금은 근로의 대가’라는 노동시간의 기본 원칙을 훼손할 것으로 본다고 인용 보도했다.

또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 고용부담금을 물리겠다는 정부의 공약에 대해서는 기업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어 사실상 반대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가 낸 ‘대선 핵심 어젠다’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노동시장 문제의 핵심은 ‘친기업적 노동정책 기조가 관철되면서 비정규직이 급증했고, 이는 사회 양극화로 이어졌다’로 요약할 수 있다. 파견·하도급·협력사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다른 명칭으로 본다.

반면 재계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기업이 근로자를 분류하는 기본 시각은 ‘기간제’와 ‘비기간제’다. 당연히 양측의 온도 차가 크다. 앞으로 5년간 노동 문제의 화두가 될 비정규직 문제는 ‘누가 비정규직인가’부터 정해야 한 걸음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정책을 전면으로 반박한 것들이다.

또 경영계와 직접 관련성이 낮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분석도 포함돼 있다. 특히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확대’나 ‘기초연금액 인상’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한 공공사회 투자’와 같은 정책에 대한 해법이 정부와 다르다.

이 문건에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두 쪽에 걸쳐 내용을 분석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중 64만 개는 ‘일자리 이동’일 뿐 창출로 보기 어렵고, 순수한 증원은 12만4000개에 불과해 현재와 같이 실업자가 300만 명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크게 역부족”이라고 봤다.

이와 관련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막대한 예산 소요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규제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등 투자 환경 개선을 통해 기업 자율에 의한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썼다. 해당 공약 실행에 5년간 2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드는 돈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논란 직후 문건 폐기

현재 이 문건은 논란 직후 폐기처분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새 정부 기조에 반하는 발언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경총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경총 관계자는 1일 “지난달 30일 경제단체협의회 운영위원회의가 열린 건 맞지만 당일 이런 보고서가 논의된 바 없으며 검토한 보고서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서”라면서 “(이 문건은) 정식 보고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실무진이 데이터를 정리한 자료인데 마치 회의에서 이를 검토한 것처럼 나와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제단체협의회는 사실 이름만 있을 뿐 의미 있는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곳으로 재계 비상연락망을 관리하는 곳 정도”라면서 “이런 곳에서 만든 내부 문건이 마치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알려져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경제단체 대부분은 그런 보고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게 재계를 대표하는 공식 의견서가 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앞서도 新정부에 바란다, 경영계 정책건의’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차기 정부는 ‘일자리 최우선의 경제운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이 건의서에는 기존의 일자리, 노사관계 분야 중심의 정책 건의를 넘어, 가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선진형 보육·교육 시스템 개선, 효율적인 복지·안전·사회보장 정책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발전 과제도 포함하고 있다.

경총의 정책건의서는 ‘되는 게 없는 나라가 아니라 안 되는 게 없는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국민 모두의 염원과 포부를 담았다.

한편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지난 4월 25일 경총포럼에서 “비정규직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경총도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중의 한 축으로서 반성해야 한다”고 직접 비판해 곤욕을 치렀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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