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잃어버리고 체포 시한 넘기고…’ 검·경 왜 이러나
‘영장 잃어버리고 체포 시한 넘기고…’ 검·경 왜 이러나
  • 권녕찬 기자
  • 입력 2017-05-19 22:40
  • 승인 2017.05.19 22:40
  • 호수 1203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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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황당 실수’…‘나사 풀린’ 수사 기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핵심 수사 기관인 검·경을 둘러싼 비난 여론이 거세다. 최근 ‘돈봉투 만찬’과 같은 굵직한 사건뿐 아니라 일선에서도 수사 과정에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사정 당국이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구속 영장을 분실하는가 하면, 긴급 체포한 피의자를 체포 시한을 넘겨 결국 풀어주는 일까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 기강 해이를 넘어서 수사의 기본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러한 실수는 제2 제3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요서울은 되풀이되는 검경의 ‘황당 실수’를 들여다봤다.
 
수사 과정 도중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피의자 석방
“흉악범이었으면 아찔”… “기강 해이 넘어서 기본의 문제”

 
지난 4일 수원지방검찰청은 패닉에 빠졌다.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A(48·여)씨의 영장 원본이 분실됐기 때문이다. 앞서 수원중부경찰서는 1일 마트에서 수차례 물건을 훔친 혐의 등으로 전과 10범의 A씨를 체포했고 재범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후 3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경찰이 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분류해 사무실에 비치했으나, 이튿날 청사에 방문한 경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A씨의 구속영장을 찾을 수 없었다.
 
검찰은 당일 청사에서 사건 기록을 찾아간 7개 도내 경찰서에 연락을 취해 행방을 물었으나 ‘찾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결국 검찰은 A씨를 석방 조치했다.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영장 원본이 필요했으나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실된 영장은 며칠 뒤 모습을 드러냈다. 영장은 엉뚱하게도 이를 신청한 수원중부서가 아닌 용인서부경찰서에 있었다. 용인서부서 측에 따르면 당일 서 직원이 검찰에서 사건 기록을 찾아오면서 A씨 영장도 함께 가져왔고, 이후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간 탓에 영장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석방된 A씨가 도주하지 않아 경찰의 영장 재신청 후 최근 A씨를 구속할 수 있었으나, 검찰은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진 데 대해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신병이 있는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돼 지역 주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장 행방불명에 이어…
긴급체포했으나 석방하기도

 
지난 3월 말에는 서울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긴급체포해 구속하려 한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검찰의 실수로 풀려난 것이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3월 28일 오후 6시쯤 사기 혐의로 중국인 B(29)씨 등 2명을 긴급체포한 뒤 30일 오전 서울남부지검에 이들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금융감독원 직원 등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6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중국 국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도주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통상 경찰은 구속 수사를 한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을 구속하는 데 실패했다. 검찰이 체포 시한을 1시간 30분가량 넘긴 30일 오후 7시 30분에야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하고자 할 때에는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경찰은 이들을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튿날 검찰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이들을 구속했고, 이후 추가 금융 피해 등을 막을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경의 황당 실수는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나타났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중순 대구 북부경찰서로부터 마약사범 C씨(44·여)의 구속영장 청구 신청을 받았으나 체포 시한을 넘겨 영장을 청구하는 바람에 결국 피의자가 석방됐다.
 
담당 검사가 결재를 한 뒤 이를 넘겨받은 직원이 법원에 영장 청구를 늦게 하면서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다시 영장을 청구해 뒤늦게 C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신고자 보복·증거 인멸 등
제2의 범죄 가능성 우려

 
이 같은 수사 기관의 실수는 제2의 범죄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당시 대부분의 피의자는 비교적 강력범죄와 거리가 멀었지만 만약 그 같은 실수가 강력범죄 사건에서 발생한다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은 “잡은 범인을 결과적으로 놓쳐버리는 그런 일은 한마디로 황당하다”며 “만약 (피의자가) 흉악범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강력 범죄라면 제2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 신고자에 보복이 가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는) 공직 기강 해이를 넘어서 수사의 기본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다”며 “결국 이러한 일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법 집행에 대한 사법기관의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인신 구속은 매우 중요한 절차이므로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의자가 도주하면 구속 공백에 따라 결정적 증거 인멸로 이어질 수도 있어 추후 사법 처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최근 대통령 선거와 그에 따른 검찰 고위직 교체기를 맞아 내부 공직 기강이 느슨해졌다는 법조계 안팎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 간부들이 금일봉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최근 터지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수사 기관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개혁 광풍을 타고 쇄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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