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질적인 선거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러한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음’ 취급했다. 종편 방송에서 보수파·중도파 유권자들에게 은근히 ‘안철수 전략적 지지’를 촉구했다고 봤다. 신뢰성이 없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비현실적인 양자대결 조사를 하여 바람을 인위적으로 일으킨다고 봤다. 그런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종편의 특징이 뉴스 해설이라면 전략적 가능성들을 언급할 수 있고, 여론조사 결과는 하나가 튀더라도 다른 조사 결과들이 발표되면 조정되기 마련이다. 결국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실제로 상승한 것인데 이를 종편과 여론조사 기관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문재인 비토 정서
안이한 대응 화 불러
근본적으론 문재인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감정의 문제다. 적극 지지층도 확고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보기 싫다는 층도 두껍다.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2007년 대선에 대입해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명박이 너무 싫어서 정동영이 아니라 차라리 이회창을 지지하는 광경에 가깝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비토’층은, 문재인이 대통령만 안 된다면 같은 야권 후보인 안철수도 지지할 수 있고 심지어는 친노 인사인 안희정도 지지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문재인 캠프는 저 ‘비토 정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고 분할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토’ 정서가 문재인의 개혁성·비주류성의 증거인 양 치장한다. 그들은 ‘비토층’을 그대로 상수로 두고 본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양 유권자들을 겁박한다. 승자독식의 한국형 선거제도에서, 선거운동을 할 때에 주요주자는 권력을 나눠서라도 일단 선거에선 이기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오직 문재인 진영만 예외다. 그들은 선거 과정에서 다른 세력, 다른 정서적 집단을 포섭하여 ‘비토층’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경멸한다. 본인들이 다 쥐고 이기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들의 캠프 내부에선 전쟁 전략 회의가 아닌 승전 이후의 논공행상을 위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2012년 대선에서도 그랬다. 지지율 3위로 시작한 문재인 후보 진영은 승리를 자신했다. 근거도 없이 안철수 지지율이 곧 꺼질 거라 봤다. 다행히 격차가 줄어들면서 단일화 협상이 시작됐고 협상 과정에서 소폭 역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나 그 지지층의 감정을 헤아리는 협상이나 사후 대처를 하지 못했다. 상대방을 압박해서 사퇴시켜 놓고 지지층이 모두 넘어오지 않았다고 대선 이후엔 안철수 후보의 행동을 패인으로 분석했다. 막상 대선 직전엔 ‘골든크로스’를 말하고 자신들이 이긴다고 자신했던 이들이다.
안철수에 남겨진
불안요소는 있다
문재인 캠프의 전략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의 역전극이 확정적일까.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두 사람의 지지율은 7일 발표된 갤럽조사에서 38%와 35%로 찰싹 붙어 있다.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가 7%, 4%, 3%로 뒤따른다. 자유한국당 홍 후보와 바른정당 유 후보의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이길 후보’란 구호로 중도·보수층을 흡수하는 안철수 후보의 성장세는 여기가 최대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야권 지지층을 추가적으로 분할해야 승산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호남이나 2030세대에서 지지를 구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아들 문제, 안철수 후보는 아내 문제로 상호 네거티브 공세에 들어갔으니 지금부터 표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불리한 지점이 있다. 먼저 지역 조직력의 차이가 상당하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결국엔 조직력이 이긴다.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대선이 ‘문재인 대세론’의 기반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안철수 역전론’에 유리한 근거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이 성적표에 만족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덤벼들 거란 것도 변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홍 후보가 조금이라도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안철수 후보가 야권 지지층에서 추가적인 바람을 일으켜도 역전이 아닌 현상유지밖에 못할 수 있다. 김종인·정운찬·홍석현 그룹의 존재도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결국 확률적으론 여전히 문재인 후보가 유리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도 있는 양강 구도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확실해 보였고 김빠진 사이다 같았던 선거가 다시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인들의 심리를 끓어오르게 하는 선거전의 특징이다. 이전에도 말했듯 유권자들 상당수가 비상한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선거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진지한 정책 대결이 이뤄지지는 못한다. 결국 상호 정치적 공세에서 기민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는 쪽이 승기를 잡게 될 것이다. 정세나 구도만 보고 누가 이길 거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는 분석일 뿐이다. 다시 이제부터 선거전이 시작이다. <시대정신연구소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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