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017년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전시회 개최
독립기념관, 2017년 4월의 독립운동가 선정·전시회 개최
  • 충남 윤두기 기자
  • 입력 2017-03-31 21:03
  • 승인 2017.03.31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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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숨은 공로자 이상정(李相定, 1896.6.10~1947.10.27)
[일요서울ㅣ천안 윤두기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상정을 2017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오는 4월 1일~30일(한 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개최한다.

 
   
이상정은 1896년 대구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형제들은 모두 한국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시인 이상화(1901~1966)가 둘째이며, 셋째 이상백(1904~1966)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 넷째 이상오(1905~1969)는 수렵가이자 저술가다.
 
그는 1910년대 초 일본에 유학해 역사학과 미술, 상업, 군사학 등을 배웠다. 특히 예비군사교육기관의 성격을 가진 성성중학교(成城中學校)에서 수학한 경험은 훗날 중국군에 복무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1917년 경 국내로 돌아와서는 대구 계성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했고, 1920년대 초에는 정주의 오산학교와 평양의 광성고보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5년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고, 그 이듬해에는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권기옥과 결혼했다. 이들은 광복이 될 때까지 내몽고와 베이징, 상하이, 난징, 충칭 등 중국 대륙을 다니며 부부이자 동료로서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이상정은 중국군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해 항일전선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1926년 중국 국민당 펑위샹(馮玉祥) 군 참모부에서 근무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중국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의 소장교관으로 취임해 한중연대에 주력했다.
 
1937년 조선민족전선연맹의 결성을 주도해 한국독립운동 진영의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외교연구위원에 선임되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임시정부의 개조와 통합을 주장해 변화를 모색했고, 중국군이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제약하려 할 때는 자주적 관점에서 강력하게 이를 비난했다.
 
광복 직후에는 상하이로 가서 한인의 권익 보호에 힘썼다. 1947년 7월 모친상으로 9월에 귀국했으며, 10월에 뇌일혈로 별세했다. 유고집으로 󰡔표박기(飄泊記)󰡕가 있어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엿보게 한다. 1977년에 독립장에 추서됐다.
 
□ 이상정 공적 내용
- 1917년 대구 계성학교 교사
- 1926년 중국 국민당 펑위샹(馮玉祥) 군 참모부 활동
- 1937년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주도
- 1938년 중국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 교관
-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
- 1945년 신한민주당 창당 참여, 흥사단 입단
 
 

충남 윤두기 기자 yd00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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