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조연·바람잡이 ‘완벽한 3인 1조’
주연·조연·바람잡이 ‘완벽한 3인 1조’
  • 이인철 
  • 입력 2003-08-21 09:00
  • 승인 2003.08.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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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가게서 산 청와대문양 물품들을 하사품인양 가장이권사업에 특혜준다 속여 영세업체들서 4억여원 갈취“나 청와대 국장인데…”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각종 기념품을 대통령이 특별히 하사한 물품인양 선물하고 영세업체들에 이권사업의 특혜를 주겠다고 속여 돈을 갈취한 일당 3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12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팀 국장을 사칭해 8명으로부터 4억3천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 등)로 주범 장모(42·무직)씨를 구속하고 전 민국당 모 지구당 위원장 출신의 이모(45)씨와 장씨의 운전기사 역할을 한 하(35)모씨를 불구속 입건했다.“진짜 사기꾼들 맞습니까?”경찰청 특수수사과 사무실에서 피해조사를 받던 A씨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조사 중간중간 경찰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경찰의 답은 “당신은 이 상황에서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느냐”는 질책뿐.경찰에 따르면 이들 3인조는 올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주범 장씨는 청와대 국장으로, 고향선배 이씨는 그를 “청와대 장국장”이라고 부르며 자신 주변의 인물들을 소개해주는 역할, 그리고 교도소 동기 하씨는 운전기사를 하며 바람을 잡았다. 주범 장씨는 “지난해 구속됐다 출소한 뒤 고향선배이자 전직 민국당 모 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이씨가 사무실을 개설했다며 놀러오라는 말을 듣고 찾아간 것이 청와대 국장으로 행세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거냐”고 묻자, 장씨가 “대선도 끝나고 해서 청와대에나 들어 가야죠”라고 한 말이 자신이 청와대 ‘장국장’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 이후 장씨는 교도소에서 만난 하씨를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일당 3만원씩을 줄테니 운전기사를 하라”며 자신의 사기행각에 끌어 들였다. 그러나 하씨가 4월경 일을 그만 두려고 하자, “일당을 5만원으로 올려주겠다”면서 “청와대에 들어가면 3천만원을 즉시 주겠다”는 말로 설득하며 계속 범행에 동참시켰다.

이들 3인조는 청와대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면 누구나 살 수 있는 시계 등 청와대 문양이 새겨진 각종 기념품을 마치 진짜 청와대 하사품인 양 가장하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장씨는 “청와대 기념품을 선물했더니, 더 좀 구해 줄 수 있느냐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황당하지만 청와대 국장 사기사건은 피해자들에게는 꿈을 꾸는 듯했다. 어느 누구도 그가 가짜 국장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피해자 A씨에 따르면 모 지구당 위원장의 경우 장씨가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러면 우리가 손을 써야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을 정도. 모르는 것이 없었을 정도로 잡다한 지식과 한국정치사를 꿰뚫고 있었던 장씨와 거기에 공범 이씨와 하씨의 위장막, 그리고 철저하게 꾸며진 이들의 사기행각에 피해자들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영세업체 대표들이었다.

모 건설업체 부사장 L씨는 청와대의 초청을 받고 이들을 만나러 갔다가 당한 경우. 장씨는 청와대 정문 부근에 숨어 있다가 L씨가 도착하자 청와대 건물에서 나오는 것처럼 위장했다. 또 청와대 관련 지식을 해박하게 풀어내며 자신이 실제 사정팀 국장인양 L씨를 믿게 만들었다. 결국 L씨는 이들에게 옥외광고물 설치 공사를 수주하게 도와달라며 1천5백만원을 건네고 말았다. 모 식품업체 대표인 A씨는 이들에게 사무실까지 내 준 경우.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친구소개로 우연히 이들을 만난 A씨는 자신의 사무실까지 내주고 일을 순조롭게 하기위해서는 명함이 필요하다는 말에 부회장이라는 명함을 건네주기도 했다. 장씨는 사무실에 한나라당, 민주당의 실세들과 찍은 사진까지 걸어놓으며 정·관계에 대단한 인맥이 있는 듯 행세했다.

이런 수법으로 8명으로부터 4억3천만원을 뜯어낸 이들의 범행은 결국 장씨를 찾는 전화가 잦은 걸 이상하게 여긴 청와대 측의 요청으로 경찰이 추적에 나서면서 꼬리가 밟혔다. 장씨가 해결해준 청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여색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A씨는 “불구속으로 나온 운전기사 하씨를 만났는 데 그가 장씨는 술집 등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다녔으며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은 거의 대부분 여색에 탕진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한편 청와대는 최근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직원이라며 사업이나 인사와 관련한 민원 해결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사기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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