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단속 나섰나?]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돌연 사퇴
[집안 단속 나섰나?]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돌연 사퇴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7-03-10 20:08
  • 승인 2017.03.10 20:08
  • 호수 1193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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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병수발, 아들 구속에 딸 소송까지…추측 난무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이 지난 6일 일신상의 이유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홍 관장은 지난달 17일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자 “참담한 심정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뜻을 주위에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홍 관장은 1995년 호암미술관의 수장이 됐고, 2004년 리움 개관 이래 관장을 맡아오며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혀 왔다. 안목과 재력을 모두 갖춘 ‘슈퍼컬렉터’의 퇴장에 미술계는 물론 재계까지 술렁이고 있다.
 

<정대웅 기자>

삼성미술관 측은 지난 6일 오전 “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퇴 이유를 일신상의 이유라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고, 미술관 측도 말을 아끼고 있다. 자세한 이유는 재단 쪽 관계자들도 모른다고 했다. 삼성문화재단은 리움과 호암미술관을 운영하는 주체다.
 

수년간 미술계 영향력 1위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관장은 이름난 고미술품 컬렉터기도 한 이병철 선대 회장의 눈에 들 만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

시아버지가 매일 10만 원을 주며 “골동품을 사오라”며 홍 관장을 특별 훈련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국립대 등록금이 5만 원가량으로 지금 물가 수준으로 치면 매일 5백만 원씩 약 4억5000만 원가량의 거금으로 석 달 동안 골동품 사오라고 지시한 셈이다.

타고난 감각에 인맥과 재력을 더하며 미술계 영향력을 키워 오던 홍 관장은 1995년부터 호암미술관 관장을 맡았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전 회장이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호 ‘호암(湖巖)’을 이름으로 붙여 1982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또 홍 관장은 2004년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직을 맡아 왔다. 리움은 개관 당시부터 소장품이 1만 5000여 점에 이를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홍 관장은 두 개 미술관의 관장직을 수행하면서 일약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올렸다. 재력이 뒷받침된 덕분에 국내 최고이자 재계 유수의 컬럭터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홍 관장은 미술전문지 아트프라이스, 미술시가감정협회 등이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에서 1위에 오르는 ‘단골’이다. 미술계에서 홍 관장을 단순한 ‘값비싼 구매자’가 아닌 안목 있는 컬렉터로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침도 있었다. 2006~2007년 국내 미술시장 호황으로 미술품 가격이 고공행진할 때 역풍을 맞기도 했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으로 수백억 원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당시 90억 원 상당 ‘행복한 눈물’의 소장경위 등을 추궁당했는데, 이 그림은 오히려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주가를 더 올리는 작용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앤디 워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였지만 비자금사건에 몰려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후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당시 미술품을 구입한 경위와 자금출처, 수많은 미술품으로 가득찼다는 에버랜드 창고 등이 발견돼 떠들썩했지만,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과 충격으로 이건희 회장의 그룹 회장 퇴진과 함께 홍 관장도 리움 관장직을 떠났다. 이후 2년 9개월 만인 2011년 3월 리움 관장으로 복귀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

미술계는 이번 홍 관장의 관장직 사퇴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아들까지 수감된 상황에서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관장직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또 호암미술관과 리움 관장 두 직함을 동시에 내려놓은 배경에는 남편인 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길어진 상황과 지난달 17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홍 관장의 주변에서는 그가 최근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최진녕 변호사는 종편 패널로 참석해 “3~4년 전부터 남편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 병원에 심근경색으로 의식 불명이다. 장남 이재용은 최순실 사태에서 구속되지 않았느냐. 장녀 이부진은 사위 임우재와 계속 몇 년째 소송 중이다.

막내 이서현 남편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뇌물공여 혐의로 여러가지 조사를 받았다”며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었기에 공식적 직책을 수행하기도 어렵고 후문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우울증도 겪고 있단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경영 승계권 ‘암투설’이 홍라희 관장에게 적잖은 부담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검찰이 최순실 최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수사할 때 박원오 전 전무는 “홍라희 관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원하지 않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밀어주고 있다”며 “동생인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과 실권을 잡으려 계획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편 홍 관장의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경우 당분간 홍 관장의 동생인 홍라영(57) 총괄부관장이 맡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삼성 특검’ 당시에도 홍 총괄부관장은 관장직을 공석으로 유지한 채 3년여간 미술관을 운영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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