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대문구 연희2동 전씨 자택 근처 공원에서 이뤄진 경매 현장을 스케치했다. 2일 3시부터 열린 전씨의 사재 경매열기는 대단했다. 전씨의 사재가 진열된 별채 앞에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온 많은 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 이들은 서로에게 “뭘 사러 왔느냐”고 묻기도 하고 전씨에 대해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경매를 주관한 서울지검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10명씩 끊어 별채에 보관된 경매물품을 관람하게 했다. 이 때문에 시작부터 먼저 들어가 보려는 사람들로 전씨 별채 주변은 관람객과 경매참여자, 취재진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치열한 몸싸움을 뚫고 별채에 입장한 사람들은 번호가 매겨진 경매물품을 관찰하고 주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자신이 원하는 물품의 번호를 메모했다. 일부는 디지털 카메라로 모든 경매물품을 찍기도 했다.
일부는 별채 앞뜰에 묶여 있던 진돗개 2마리를 보며 “주인 잘 못 만나서 팔리게 될 운명”이라며 소곤거렸다. 그러나 진열된 경매물품을 보고 난 후 참여자들의 눈빛은 실망감이 역력했다.“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에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60대 김모씨는 “특별한 게 하나도 없다”며 투덜거렸고, 고덕동에서 왔다는 50대 정모씨도 “그림과 도자기 정도만 쓸만하고 나머지는 별로”라고 전씨의 사재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이날 경매물품을 공개한 뒤 경매 장소는 전씨 자택 근처의 공원으로 옮겨졌다. 당초 전씨의 경호원 숙소에서 경매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참여자가 많자 긴급히 장소를 옮긴 것. 본격적인 경매는 이날 오후 4시30분께부터 시작됐다.공원에 모여든 참여자들은 경매참여용지를 받아들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번호를 적었다. 그러나 경매를 주관한 서부지원측의 “물품 하나하나를 구별해서 경매를 하지 않고 49개 물품들을 종류별로 7개 묶음으로 호가를 정하는 부분 일괄판매방식으로 진행한다”는 말을 듣고 참여자들의 경매방식에 대한 불만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 경매 참여자는 “무슨 경매를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느냐”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물품 하나, 둘 정도만 사는 것이 예사 아닌가. 나도 원하는 물품만 사기 위해 돈을 준비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경매를 하면 거액을 준비한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다수의 참여자들도 “이곳에 와서야 이런 방식으로 경매가 진행되는 것을 알았다”며 “경매방식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이곳에서 말해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인지 수백명이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낙담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 경매참여자들은 15명 안팎에 불과했다.
이날 첫 번째 경매는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용품과 진돗개 2마리. 630만원부터 시작한 경매는 고미술품 거래상 김홍선(50)씨와 대구공고 동문회 사람들이 경합을 벌여 무려 10배가량 뛴 가격 7,300만원에 김씨에게 낙찰됐다. 7,300만원까지 경합을 벌였다 준비한 돈 보다 많이 올라가자 어쩔수 없이 중간에 포기한 대구공고 동문회 사람들은 “‘각하’께서 쓰던 물품들을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려고 했다”며 경매장 주변에 모여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또 네번째 물품인 서예작품과 다섯번째 동양화 6점도 사들였고 그가 경매에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억1,850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경매현장에 직접 오지 않고 대리인 두명이 대신 참석했으며 이들 대리인들은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일곱번째 경매에 참가할 것처럼 매수신청서를 내다가 갑자기 경매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날 공시가 보다 가장 많이 뛴 금액은 두번째 경매였던 전씨의 랭스필드 골프채. 30만원부터 시작돼 무려 900만원까지 올라가 경매업자 조용민(40)씨의 손에 넘겨졌다. 조씨는 “다른 물품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가격이 너무 뛸것으로 보여 가장 싼값에 낙찰 받을 수 있는 골프채 경매에 참여했다”면서 “낙찰된 골프채는 사용하지 않고 기념으로 간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매 낙찰자가 “많은 돈을 주고 낙찰받았는데 왜 돌려주냐”며 “전씨에게 돌려줄 생각이 없다”고 말한 반면, 일곱 번째 경매 물품인 육각삼절판, 주발대접, 주전자 등을 낙찰받은 김흥치(60)씨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일 때 나는 한 사람의 국민이었다”며 “어르신께서 원한다면 돌려드리겠다”고 말해 주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세간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전씨 사재에 대한 경매는 오후 5시 30분경 모두 끝났다. 전씨의 경매물건 49점의 시작가는 총 1,790만원이었으나 최종 낙찰가는 전체 1억7,950만원을 기록해 법원 감정가격의 10배가 넘었다. 한편 전씨의 사재 경매현장을 지켜보던 이웃 주민 김모(50)씨는 “결국 국민의 돈으로 추징금을 내는 꼴”이라며 “그 옛날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전씨의 말년이 참 초라해 보인다”고 혀를 찼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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