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살 뻗친 검찰
망신살 뻗친 검찰
  • 조택영 기자
  • 입력 2017-02-10 21:37
  • 승인 2017.02.10 21:37
  • 호수 1189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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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구 감싸기’ ‘무능한 검찰’ 비난 쇄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검찰은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현직 검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었다. 가뜩이나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뒤이어 공정과 청렴을 강조하며 검찰조직 개혁과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그러던 중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정치성 시비가 일기는 했지만 특검의 거침없는 수사에 검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다시 쌓이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검사와 법조인 등이 연루됐던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검찰의 예상과 다르다. 한마디로 망신살이 뻗쳤다. 처음부터 여론에 떠밀린 무리한 수사인지 제 식구 감싸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헌법이 규정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김형준 전 부장검사, 5800만 원 뇌물 받고 7700만 원 선고?
진경준 전 검사장,‘대가성’ 입증 부족이 낳은 무죄 판결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구속은 검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현직 검사들의 구속은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사건 내용 자체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비상식적이었다. 검찰 내부에서 조차 철저한 수사를 외친 이유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재판 결과를 보면 국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뇌물죄 증거 부족
결국 면죄부 준 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고교 동창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검찰은 김 전 부장검사가 총 28회에 걸쳐 5800만 원(2400만 원 상당의 향응, 3400만 원 상당의 현금)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전제하고, 법정형이 징역 7년 이상인 특정범죄가중법위반(뇌물)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2700여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데, 김 전 부장검사는 이 의무를 저버렸다”면서 “검찰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부장검사로서 다른 상당수의 검사에게 영향을 미칠 지위에 있었던 만큼 신중히 처신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전 부장검사는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으로 근무하면서 그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범죄수집 등의 중요 업무가 엄중히 행해져야 할 공적 장소인 대검찰청 범죄정보 담당관실을 특정 재소자에 대한 편의제공의 사적 장소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소자 신분이었던 고교 동창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고가의 향응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았다”며 “이 사건 범행으로 검찰 조직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주장한 특정범죄가중법위반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28회 향응 수수 중 5회는 김 전 부장검사가 참석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2770만 원 상당만 뇌물로 수수했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법위반(뇌물)죄가 아닌 법정형이 징역 5년 이하인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뿐만 아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의 증거인멸교사, 동창생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로 판단했다. 김 전 부장검사가 동창생에게 휴대폰 파기를 권유하고, 동창생이 휴대폰과 업무 다이어리 등 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없앤 부분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검찰은 김 전 부장검사가 70억 원대의 사기·횡령 혐의로 고소당한 동창생의 형사사건 무마를 위해 서부지검 담당검사는 물론 부장검사들과도 접촉했다는 의혹도 받았지만 이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자 ‘처음부터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지난해 말에 진경준 전 검사장의 ‘130억대 주식 대박’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내린 상황이다 보니 여론이 좋을 수 없다. 당시 진 전 검사장은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9억5000만 원의 주식, 차량, 여행경비 등을 제공받았다.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주식에 대해서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확실한 증거는 없고
청탁·알선 대가 주장뿐

 
법조인이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했던 대형사건이 무죄를 선고 받기도 했다. 감형도 아닌 무죄 판결이다 보니 ‘무능한 검찰’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대가로 수십억 원대의 일감을 받고 변호사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지난 7일 박 전 대표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재판부는 “남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비롯한 관련자들 진술을 종합해 보면 박 전 대표가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를 상대로 청탁 또는 알선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남 전 사장은 민 전 행장을 비롯한 산업은행 전반의 연임 관련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남 전 사장이 박 전 대표에게 부탁한 내용은 산업은행 분위기를 알아봐주라는 것으로, 이는 알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남 전 사장은 그 분위기만 파악하더라도 연임에 성공하면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줄 의사가 있었다고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무산 후 이미지 제고, 매각 재추진을 위해 전문적인 홍보컨설팅의 수요가 증가했다”며 “남 전 사장이 상대적으로 고액을 지급했지만, 그것만 갖고 민 전 행장에 대한 청탁과 알선의 대가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민유성(63) 전 산업은행장을 상대로 연임 로비를 하는 대가로 남 전 사장으로부터 21억3400만 원대 홍보컨설팅비 일감을 수주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박 전 대표는 2009년 2월 산업은행의 단독 추천으로 남 전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자 그에게 20억 원 상당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남 전 사장은 착수금 5억 원과 매월 4000만 원을 자신의 재임 기간인 36개월에 맞춰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박 전 대표는 민 전 행장에게 청탁을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2009년 자금난을 겪던 금호그룹으로부터 11억 원을 챙긴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도 받았다.
당초 검찰은 “박 전 대표가 취득한 범죄수익이 31억 원에 이르고, 공무수행의 공정성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중형을 선고해 법의 엄중함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7년, 추징금 21억3400만 원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일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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