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직장에 다니며 경제활동을 하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푸어족이 늘고 있다. ‘푸어족’은 영어로 ‘가난한’이라는 뜻의 형용사인 ‘poor’와 한자 ‘족(族)’의 합성어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지난해 중순 직장인 1143명을 대상으로 ‘자신을 푸어족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70.4%가 ‘그렇다’고 답했다. 푸어족 유형으로는 적은 수입 때문에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가 66%로 가장 많았다. 또 비싼 전·월세 비용으로 여유롭지 못한 렌트푸어 25.1%, 집을 마련했지만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21.4%, 학자금 대출로 인해 생활의 여유가 없는 학자금푸어 19.6% 등 유형도 다양했다. 이중 소득에 비해 비싼 차를 사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카푸어족이 젊은 층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카푸어족에 대해 살펴봤다.
수입차 구매자 중 절반 차지하는 20~30대 ‘큰손들’
꾸준한 노력과 저축 대신 대출 등 위험한 길 선택
중년층에 비해 비교적 연봉이 낮은 청년층이 보증금 500 ~1000만 원, 월세 30~70만 원짜리 월셋집에 살면서 5천만 원이 넘는 외제차를 타는 현상, 일명 ‘카푸어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카푸어’를 검색하면 이들의 고민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20대 자영업자인데 지금 아니면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외제차를 구입했다. 이후 사고가 나니 유지비가 막막하다. 나는 카푸어인가?” “20대에 연봉이 2200만 원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며 현재는 국산차를 타고 있지만 중고 외제차를 구입하려 한다. 외제차 구입 시 지인들에게 카푸어 소리를 들을까?” 등 본인이 외제차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구매하려 하거나 구매한 사람들의 심경을 알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행동이 ‘허세’가 아님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듯했다.
기자는 서울의 대표적인 원룸촌인 신림, 구로, 왕십리 지역을 돌아봤다. 출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제차는 흔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원룸 건물 주차장은 외제차들로 가득 찼다. 더 놀라웠던 것은 주차장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고시텔 건물에서도 외제차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대접 받기 위한
생존 몸부림?
심리전문가들은 ‘푸어족’의 주된 원인에 대해 고시·원룸 거주자, 비정규직, 소기업, 저학력자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재 사회에서 소득에 어울리지 않는 지출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에게 모욕당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진단한다.
푸어족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성공하기보다는 대출을 받더라도 호화로운 집과 차를 사는 등의 행동으로 성공을 외적으로 부각시키기는 게 빠르고 쉬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연스레 미래를 위한 준비나 저축보다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지금의 소비 패턴을 선택한다. 문제는 푸어족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을 더욱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20~30대 구매자 증가
부품 직접 거래도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4년 전 연령 수입차 개인구매 고객이 11만7360명이다. 이중 30대 구매자가 4만4652명으로 연령별 구매율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수입차 구매자는 9304명, 30대는 4만4652명을 기록해 2004년 수입차 구매율과 비교했을 때 19배 이상 증가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이 밖에도 수입차의 비싼 유지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 부품을 구입하거나 수입 중고차를 거래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연간 수입 중고차 거래대수는 2013년 17만7028대, 2013년 21만1640대, 2014년 24만7141대로 매년 약 18% 안팎의 성장세를 보였다.
수입차 판매가 높아지는 만큼 중고차 시장의 매물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하락했고 이는 수입 중고차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마케팅용으로 만들어진
유예 할부 제도 ‘위험’
청년층의 수입자 구매가 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다양한 제도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유예할부제도다.
‘유예 할부 제도’란 차 값의 원금 일부를 유예시켜 수년 뒤로 미룬 뒤, 이자만 받다가 유예 할부가 끝나는 기점으로 일시에 잔금을 변제하는 제도다.
주로 외제차 같이 비싼 물건을 좀 더 부담 없이 구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프라이스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이 제도로 차 값의 70%를 3년 뒤에 갚을 수 있어 젊은층들이 외제차를 좀 더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수입차 유예 할부 제도 때문에 무리해서 외제차를 샀다가 경제적 위기에 몰려 빚더미에 앉는 카푸어족이 늘고 있다.
할부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나오는 차가 2008년 78대 수준에서 2012년에는 400대로 급증했다. 젊은 층이 당장의 빚을 나중으로 미루다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장모(34·남)씨도 연봉에 비해 비교적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있었다.
그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영업 분야이다 보니 저가의 국산차를 몰면 상대방에게 무시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구입했다. 또 차량 구매 당시 주변인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는 제대로 된 저축과 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겉치레에 집중된 것 같다. 국산차와 외제차는 도로에서도 대우가 달라지며 내 연령대에서는 여자친구를 만들 때에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채택된다”고 전했다.
또 “내 주변의 카푸어족이라 생각되는 지인들은 ‘본인이 타고 싶으면 타는 것이고 이때 아니면 언제 즐기겠냐’는 심정이 크다. 하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은 현재의 빚은 언젠가 화살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