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대한민국은 현재 ‘촛불’과 ‘태극기’의 세력 싸움이 한창이다. 이는 이번 대선이 ‘촛불’과 ‘태극기’, 다시 말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 내에서 치러질 것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정권교체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 민심’은 일찌감치 그들의 주인으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택했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지율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마저 지난 1일 돌연 대권 불출마를 선언했다. 문 전 대표로선 ‘촛불’의 따뜻함을 넘어서 평온함마저 느끼게 된 모양새다. 반면 ‘태극기 민심’은 아직 그들의 주인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반 전 총장이 보수의 깃발을 들 것으로 믿고 지지를 보냈으나, 그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실망한 ‘태극기 민심’은 반 전 총장을 떠났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의 ‘촛불’에 맞설 ‘태극기’의 주인은 누가 될까? 이에 ‘보수 적자 후보’를 갈망하는 ‘태극기 세력’은 그들의 주인으로 황교안 권한대행과 홍준표 경남지사를 꼽는다.

- 강력부 검사 출신 洪, 文 ‘저격수’ 나서야…
- 출마 ‘명분’ 부족한 黃, ‘출사표’ 대신 ‘추대’ 받나?
지난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 불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1강 1중 다(多)약’ 대선 구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귀국 이후 반 전 총장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정체성을 보이며 20%를 유지하던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급락했다. 반 전 총장을 ‘정통 보수 후보’로 믿었던 ‘태극기 민심’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후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태극기 민심’은 무당층을 형성하면서도 ‘보수의 적자’ 황교안 권한대행을 지목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지난 1월 차기 지도자 선호도 월례 조사에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락한 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5%의 지지율로 우뚝 섰다.
潘 퇴장하자
黃 ‘2위’ 급부상
나아가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발표한 지난 1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26.1%로 30%대를 달리던 설 연휴 전 조사보다 6.7% p 급락한 반면 황 권한대행은 12.1%로 처음으로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사실 반 전 총장의 ‘반반(半半) 행보’로 인해 대부분의 보수 지지층이 그를 떠났지만, 그럼에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일부 보수 지지층은 반 전 총장에게 머물러 있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중도 포기하자 이들이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재빨리 옮겨가며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치솟은 것이다.
게다가 황 권한대행은 새누리당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에서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투데이가 알앤써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1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황교안 권한대행은 18.8%로 5.4%에 그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을 제치고 새누리당 대선주자 적합도 1위에 올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무당층으로부터 황교안 권한대행이 새누리당 대선 주자 중 가장 높은 28.6%의 선호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범위를 전체 대선주자로 확대해도 황교안 권한대행은 무당층으로부터 16.6%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이는 부동의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문 전 대표의 무당층 선호도인 14.0%보다 앞선 것이다.
역대 모든 선거에서 무당층의 표심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황교안 권한대행의 결심 여부에 따라 그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친박 핵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출마 선언만 하면 제가 보기에는 (지지율이) 최소한 두 배 이상 나올 것”이라고 호언했다.
홍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교안 권한대행께서 아직 후보 선언을 하지도 않았고 출마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말씀을 안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지지가 나온다는 거는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단일 후보로서, 보수의 단일후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지금 국민들이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온라인에서도 황 권한대행 지지 세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선 황 권한대행을 지지하는 각종 모임과 SNS 계정이 생겨나며 보수성향 네티즌들의 결집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정치권 인물에게 나라의 운명을 지우기엔 사기꾼 내지 종북·친북, 기회주의자들뿐이고 국가 정체성이나 이념의 문제에서도 뚜렷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며 “황 총리는 모든 면에서 잘 준비된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대안론’에는 몇 가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황 권한대행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최순실 게이트’로 초래된 국가 위기 상황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임무를 짊어진 황 권한대행에겐 대권 출마 명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시민 A 씨는 “이제 황교안 권한대행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섰다”며 “운명은 그에게 국정 수행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긴 데 이어 이번에는 더 막중한 구국의 임무를 그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고 황 권한대행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야 하는 데 당위성을 부여했다.
만약 황 권한대행을 새누리당이 ‘태극기의 부름’이라는 명분 하에 대선 후보로 ‘추대’한다면, 황 권한대행 입장에서도 재고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다만 황 권한대행이 ‘보수 적자 후보’로 출마한다 해도 여전히 난관은 남아있다. 혈혈단신으로 보수 후보로 출마한 황 권한대행에게 문재인 전 대표의 ‘호위 무사’들과 그를 주인으로 점찍은 ‘촛불 세력’이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TK, 황교안·홍준표
누구 선택할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극기 세력’은 황 권한대행의 ‘파트너’이자 ‘페이스메이커’로 홍준표 경남지사를 지목하고 있다. 틈틈이 대망론을 피력해온 홍 지사 주변 기류도 심상찮다. 오는 16일 ‘성완종 리스트’ 관련 정치자금법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면 홍 지사가 움직일 것이라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정치권 역시 홍 지사가 지난해 초 이미 ‘대권 도전’ 선언을 했고, 최근에는 “두 가지 올무(주민소환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서 벗어난다면…”이라고 여운까지 두면서 대망론을 심심찮게 흘려왔기 때문에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TK 역시 영남권 보수성향 대권주자로 황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홍 지사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홍 지사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지만 창녕이 사실상 대구 생활권역이고, 영남중·고교를 졸업하는 등 학창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TK 발(發) ‘태극기 물결’에 힘입은 여권에서 깜짝 놀랄 ‘제3의 후보’가 등장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은 만약 새누리당에서 황교안-홍준표-‘제3의 후보’ 조합이 탄생한다면 문 전 대표도 마냥 ‘촛불’의 따뜻함에 취해 있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황 권한대행과 홍 지사가 새누리당의 당내 경선에 참가해 ‘드라마’를 쓰게 되면, 야권에 빼앗긴 ‘경선 시청률’을 되찾아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홍 지사가 분노한 ‘태극기 세력’과 함께 황 권한대행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준다면 ‘보수의 집결’ 나아가 ‘보수 정권 재창출’도 꿈만은 아니라는 평가다.
범여권 후보 지지율
黃에 흡수될까?
사실 여기저기서 홍 지사의 대권 출마를 권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는 있지만 그의 지지율은 아직 황 권한대행에 한참 뒤처진다. 설 연휴 민심 청취에 나섰던 TK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도 “지역에서의 황 권한대행 후보론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황 권한대행이 ‘보수 적자 후보’를 갈망하는 TK 민심에 최 근접해있음을 시사했다.
즉 ‘촛불’의 주인은 문 전 대표로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태극기’의 주인도 머지않아 황 권한대행으로 정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홍준표 지사 나아가 유승민 남경필 이인제 등의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머지않아 황 권한대행에 흡수될 것이라는 것.
문 전 대표가 한때 촛불 정국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던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을 흡수한 사실은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수의 심장’인 TK에서의 황 권한대행 지지율 역시 이를 거든다.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 하루 전인 지난 1월 31일 매일신문과 TBC가 공동으로 대구경북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황 권한대행은 24.0%를 기록해 24.6%를 기록한 반 전 총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의 표를 황 권한대행이 흡수한다고 가정했을 때, TK 내에서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50%에 육박하게 된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홍 지사가 ‘문재인 저격수’ 역할까지 맡아 준다면 황교안-홍준표 조합의 화룡점정을 찍게 될 것이라고 정치권은 말한다. 실제로 홍 지사는 강력부 검사 출신이다. 그는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로 불린 정덕진 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사 출신인 박철언 전 장관을 구속 기소하는 강단을 보인 바 있다.
반면 같은 검사 출신임에도 황 권한대행은 홍 지사에 비해 과묵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오래 접촉해 온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정치 지도자로서 황 권한대행의 강점은 큰 꿈을 꾸면서도 가슴속에 조용히 숨겨둘 수 있는 인내력과 침착함”이라고 밝혔다. ‘저격수’로서는 황 권한대행에 비해 홍 지사가 안성맞춤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홍 지사 입장에서도 황 권한대행 ‘불쏘시개’ 역할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르며 구설수에 시달린 홍 지사다. 이번 기회로 그는 보수 지지층에 단번에 이미지 쇄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명도 자체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이렇게 되면 홍 지사는 올라간 지명도를 통해 차차기를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정치권은 말한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