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종인·손학규 제3지대·바른당 유승민·남경필 ‘악재’
반기문 전 총장의 대권 중도 하차는 여야 잠룡군의 희비를 교차하게 만들었다. 외형상 문재인 전 대표는 ‘대세’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됐지만 마냥 좋아하긴 이르다. 반 전 총장의 부재로 더욱 공고해진 ‘문재인 대세론’이 독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문 정서가 확산돼 문재인 대 중도·보수 정당 대연합 후보가 출현할 경우 승부를 예측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대 수혜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 지지의 근간인 정권교체 열망에도 부합되는 후보다. 또한 중도·보수 이미지가 반 전 총장의 낙마로 실망한 중도 보수층으로부터 ‘간택’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안 전 대표는 지난달 18일 기자간담회장에서 반 전 총장의 낙마를 예측하면서 “이번 대선은 결국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고, 이길 자신이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문·안 양강 공고 ‘철수’ 최대 수혜자로
실제로 안 전 대표 측은 보수 진영의 후보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야권 후보 간 양강 대결로 흐를 경우 영남 보수층 유권자까지 흡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3지대 빅텐트론’이 ‘빈텐트론’으로 바뀌면서 새누리당과 친문 세력을 제외한 민주당과 1대1로 맞설 단일 후보로 부상한 셈이다. 영남 보수층의 선택은 호남에 기반을 둔 안 전 대표에게 호감을 느끼기보다 문 전 대표 당선이 못마땅해 마지못해 안 전 대표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안 전 대표 다음으로 수혜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반 전 총장 부재로 지지율은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 전 총장이 낙마한 이후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조사한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문재인 26.1% 다음으로 황 대행총리가 12.1%로 2위를 차지했다. 반 전 총장을 지지한 보수·영남 지지층이 이탈해 황 대행총리에 쏠림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고향이 충북 음성이라는 점에서 ‘충청 대망론’이 그의 귀국과 함께 급부상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하차로 충청 민심은 충청 출신 안희정 충남지사와 정운찬 전 총리로 향하고 있다. 안 지사는 최근 탄핵 정국에 부상한 이재명 성남시장을 제치고 2위로 등극했다. 무엇보다 ‘민주당 경선 승리=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내 문·안 간 치열한 경선이 예고된다.
정운찬 전 총리 역시 수혜자다. 정 전 총리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충청대망론’의 한축을 담당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타진하다 꼬이면서 국민의당으로부터 손학규 의장과 함께 입당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정 전 총리의 경우 문 전 대표가 있는 민주당에 입당하든 안 전 대표가 있는 국민의당을 선택하든 몸값은 수직 상승했다. 충청도 지분과 ‘동반 성장’이라는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갖고 어느 당을 선택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총리 ‘0순위’로 꼽히고 있다.
반면 반 전 총장의 조기 낙마로 울상인 잠룡도 있다. 설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다. 대구가 지역구인 유 의원의 경우 반기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젊은 차세대 리더로 부각되면서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TK 보수층이 반박근혜 전선 선봉에 있는 유 의원보다 황 전 대행총리로 향하면서 크게 주목은 못 받고 있다. 남 지사의 경우도 70대 반 전 총장의 퇴장으로 ‘50대 기수론’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바른정당 ‘반, 불쏘시개역 기대’ 아쉬움
하지만 두 인사가 내심 기대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연이은 실수로 지지율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을 선택해 경선을 치르며 ‘불쏘시개역’을 담당하길 기대한 것이다. 유 의원이든 남 지사든 경선에서 반 전 총장을 꺾고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문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호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김빠진 경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손학규 의장 역시 김빠지긴 마찬가지다. 당초 손 전 고문은 개헌을 매개로 반 전 총장과 함께 제3지대에서 ‘빅텐트론’을 통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반 전 총장 역시 대선전 개헌과 임기단축에도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제7공화국을 열자’는 손 의장과 뜻을 같이하는 행보였다. 또한 반기문, 손학규, 안철수 3인이 경선을 치를 경우 경선 흥행도 불러일으키고 ‘야권 대통합’ 카드를 내밀어 승리도 내심 자신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선무대에서 퇴장함으로써 국민의당 최대 주주인 안 전 대표와 일합을 겨뤄야 한다. 반기문 빈 자리에 정운찬 전 총리가 들어와 3자가 치른다고 해도 반기문 효과는 볼 수 없게 됐고 ‘세력’도 없는 손 의장의 승리는 장담하기 힘들게 됐다. 이에 손 의장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긴급 회동을 통해 꺼져가는 ‘제3지대 빅텐트론’을 되살리기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차기 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김 전 대표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제3지대 빅텐트론’(반기문, 안철수, 손학규, 남경필, 김부겸)이 ‘스몰텐트론’(손학규, 안철수, 남경필)로 축소되면서 모양 빠지게 됐다. 김 전 대표의 경우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 측근을 통해 안희정 충남지사 탈당을 설득한 바 있다. 하지만 안 지사가 고사하고 김부겸 의원 역시 ‘제 3지대행’을 거부하면서 김 전 대표의 당내 입지도 약화됐다.
평소 김 전 대표는 ‘품안에 탈당계를 갖고 다닌다’할 정도로 친문 진영과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물러난 상황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공고해져 탈당하기도 잔류하기도 애매모호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직접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카더라식 소문’으로 치부되고 있을 정도로 당내외 위상은 약화됐다.
대선정국은 반 전 총장의 불참으로 바른정당 후보,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안철수 4파전 양상으로 흐를 공산이 높게 됐다. 대선 막판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의 연대가 조기대선 막판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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