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

2004년 5월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을 모두 만족시키며 매년 5월 대학로의 대표적인 래퍼토리로 자리 잡은 연극 ‘짬뽕’이 또 다시 춘래원 영업을 시작한다.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연극 ‘짬뽕’은 5·18이라는 심각한 사건을 기발한 설정 속에 도입한 블랙코미디로 허벌나게 웃기면서도 코끝 찡한 감동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 작품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가운데, 비극적이고 참담한 역사를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그 날을 기억하는 추억의 시간으로,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의 아픔을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10 연극 ‘짬뽕’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신작로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 김원해, 정경호, 최재섭, 이 각기 다른 3색의 매력으로 매 공연을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코미디 연극의 진수와 감초 같은 스크린 연기로 주목 받아 온 세 주인공들은 2010 연극 ‘짬뽕’에서도 특유의 코믹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캐릭터로 빛을 발하여 관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을 전망이다.
요즘도 공연장과 스크린, 브라운관을 바삐 오가며 땀 흘리고 있는 세 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선사하는 속 시원한 웃음과 얼큰한 감동 한 그릇에 풍덩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30년 전 ‘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30년.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건의 해석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 속에서 왜곡된 기억들을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중이고, 새로 태어난 세대들은 5·18을 8·15 광복절과 혼동할 만큼 역사의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연극이라는 형식 속에서 각색된, 혹은 왜곡된 기억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다뤘는가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최소한 광주의 기억의 원형에 접근하려는 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자 통한일지라도 그 날의 기억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페이지임은 확실하다. 진실이 무엇이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5·18은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고, 분명 우리에게는 ‘그날’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연극 ‘짬뽕’은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벌어졌다고 믿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심각하게, 사실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배제하고 코미디라는 장르를 차용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자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개되는 사건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기도 하기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사건 자체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우왕좌왕 하는 인물들을 그저 웃음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쏟아내는 순박한 사람들, 광주 그 자체가 삶의 터전이었던 그들과 함께 배를 잡고 웃다가도, 단지 짬뽕 한 그릇 때문에 벌어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 앞에 힘없이 주저앉은 그들의 허탈함과 슬픔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연극 ‘짬뽕’은 함께 부대끼는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마음속에 소박한 꿈을 키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게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거대한 사건 앞에 내동댕이쳐진 그들은 그저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모으고,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고 싶은 소박한 꿈을 키우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을 뿐인 소시민들이다.
꿈을 좇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여러 가지 재료를 갖추어 영양가가 풍부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입맛을 돋구는 서민의 음식 ‘짬뽕’ 한 그릇과도 닮아 있다. 입 안이 맵고 얼얼하면서도 가슴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은 얼큰한 짬뽕 국물 같은 인생…. 관객들은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웃음과 함께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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