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의원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역정을 들여다봤다.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이 SK측으로부터 받았다는 1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최 의원은 지난 10월 24일 성명에서 “대선자금은 정치적 사안이라 끝까지 함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이 3차례에 걸쳐 소환했고,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접하고 (돈받은 사실을)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최 의원 스스로 SK비자금이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쓰였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SK가 비자금 전달 창구로 왜 최 의원을 선택했을까. 이는 최 의원의 정치 역량이 그만큼 막강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우선 최 의원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는 경기고 동기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라는 점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 이런 인연으로 최 의원은 이 전 총재가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후보에 오르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이런 두 사람의 친분 때문에 SK가 최 의원을 통해 거액의 대선자금을 전달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정치권 시각이다. 최 의원은 또 한나라당내에서도 대표적인 재력가로 꼽힌다.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이 전총재가 당을 운영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71년 제 8대 국회 때 공화당 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 여러 차례 굴곡을 겪었던 3선 의원. 강릉 최대의 문중인 강릉 최씨 토박이인 최 의원은 문중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 유지로서 지명도도 높은 편이다.특히 부친 최준집씨는 일제시대부터 양조장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강원지역에서 ‘최고의 갑부’로 통했다. 최 의원 자신도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았고,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경월소주 회장과 강릉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내 손꼽히는 재력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강릉 지역내서 높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그는 지난 71년 8대 국회에 진출했고, 지난 92년에 14대 국회에 다시 입성해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는 최각규 전지사의 비서실장을 지낸 ‘황학수씨의 돌풍’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그리고 지난 16대 총선에서는 2대에 걸친 병역면제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꾸준한 지역구관리 노력 덕분에 최각규 전지사와 황 전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누르고 4년만에 다시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이와 함께 16대 총선 선거 당시 부정선거 혐의로 의원직을 잃게 될 위기에 몰리자, 대법원 확정판결 직전 의원직을 자진 사퇴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피선거권 박탈을 피해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하기 위한 편법을 썼던 것.
이런 그의 정치 도박은 이 전총재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성공을 거뒀다. 당 안팎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전총재는 최 의원을 공천, 당선 시켰다. 이와 같은 이 전총재의 후광으로 다시 국회에 입성한 최 의원은 국회 정무·재정위원장 등을 지내며 재계의 인맥을 넓혔다. 이번 SK 비자금 등에서도 드러났듯, 그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재정위원장 자리를 맡아 돈 관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재계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정치적 성공(?)속에서도, 그의 사업은 퇴조를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14대 국회에 진출했을 당시, 그가 운영하던 경월소주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시련이 닥쳤다.강원지역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던 경월소주는 90년대 접어들면서 시장점유율이 3∼4%대로 떨어졌고, 곧바로 자금압박을 받았다.
결국 지난 73년부터 20여년간 경영했던 경월소주를 93년 두산에 넘겨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이런 경제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최 의원의 재력은 여전했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2000년 7월 공개한 ‘16대 국회 국회의원 재산등록’에 따르면, 강원도 강릉·속초·동해시 등에 대지, 도로, 묘지, 공장, 임야, 전답 등 수십억원대의 부동산과 각종 증권·예금 등 120여억원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최 의원은 경월소주를 두산에 매각할 때 생긴 빚 등으로 자금압박을 받아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두 아들도 경영난을 겪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등기부등본상 최의원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상당수가 ‘K이동통신사’와 ‘K사’의 채무 등으로 압류(근저당 등) 상태에 처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런 자금 압박은 재산 신고 내역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2003년 2월에 신고한 재산변동목록에 따르면, 강릉시 포남동, 송정동 일대의 땅을 팔았고, 동해시 발한동 땅을 빚 담보로 제공했다가 경매 처분을 받기도 했다. 최 의원은 2003년 신고할 당시 30여억원의 재산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SK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자금 모두를 당에 전달했다.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100억원이 당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발언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대선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김영일 의원은 “SK비자금 100억원은 대선자금으로 집행됐다”고 시인했다. 김 의원은 “다급한 당 재정사정에 이 자금이 떳떳치 못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대로 바로 돌려보내지 않고 이를 선거자금으로 집행함으로써 책임을 더욱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이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자 선대본부장으로서 대선자금 문제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있는 데 대해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특히 그는 “이회창 전총재가 선거자금의 모금과 집행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이 전총재가 ‘SK 비자금’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지난 27일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나라당 등 정치권은‘최돈웅 파일’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검찰 수사 등에서 그가 어떤 얘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정치권 핵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 지금 정치권은 ‘대선자금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정하성 haha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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