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에로스를 만나다 [42] 최인현 감독의 <이상의 ‘날개’>
스크린 속 에로스를 만나다 [42] 최인현 감독의 <이상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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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3-16 13:31
  • 승인 2010.03.16 13:31
  • 호수 829
  • 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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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飛上)하는 성(性)적 욕구 ‘그것은 날개였다’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의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객(來客)들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나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이상의 소설〈날개〉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나’가 자기 아내와 동침을 하고는 아내에게 돈을 놓고 나온다. ‘나’는 단순히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끼고 말할 수없는 감동을 느낀다.

아내와 같이 잠을 잤다는 사실보다 단지 대가를 지불하는 소비를 했다는 사실에 더 큰 희열을 느끼는 것이고, 내객들이 아내에게, 아내가 자신에게 한 바로 그 소비를 자신도 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인 것이다. 언제나 아내가 던져주는 돈을 받기만해야 하는 자신이 처량하고 싫었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야속하고 슬펐다. (중략)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보다. 돈이 왜 없느냐면서…’

몸 파는 창녀와 내객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내를 서로 교환하고 섹스 파트너를 서로 공유하는 스와핑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하는 것을 보며 즐기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아내와 즐기는 걸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기막힌 운명의 올가미에 점점무기력의 나락에 빠지고 이젠 박제가 되어버린 한 지식인이 자신을 향해 노래하는 슬픈 장송곡이다.

천재 소설가 이상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1968년에 만들어진 최인현 감독의 영화 <이상의 날개> 두 주인공. ‘나(신성일분)’와 ‘금홍(남정임분)’의 관계는, 40년이 넘게 지난 21세기를 사는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자본제일주의 시대에 하루하루가 다른 첨단문화를 살며, 매사 매순간 현실과 직면하는 가치질서의 혼돈과 개인적인 제긴장의 깊은 상처가 한 지식인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고 미동도 할 수 없는 인간 박제를 만들어 간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바탕이 난해한 심리소설이 원작이니만큼 영화 역시 이야기 구조는 아니다. 리얼하고 디테일한 상황을 통한 이상심리를 다루는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다소 실험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식인이다. 몸은 약하고 행동은 게으르며 매사에 의욕이 없고 늘 지쳐있다. 그리고 현실적 감각은 밝지 않지만, 반면 자의식은 강하다.

도심 속 쪽방(유곽/遊廓)에 세 들어 사는 ‘나’와 아내. 장지 건너 아내의 방에는 매일 내객이 찾아들고 아내는 손님에게 몸을 판다. 음침한 좁은 방안을 벗어나지 않고 늘 그 안에서만 뒹굴며 낮잠을 자거나 혼자 공상에 잠기며 시간을 보내는 장지 뒤의 ‘나’, 그는 손님을 맞을 때마다 아내가 주는 감기약(실은 수면제)을 받아먹고는 잠이 든다. 아내는 잠든 ‘나’의 머리맡에 내객이 주고 간 돈에서 동전 몇 개를 놓고 나가지만, 항상 방안에만 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동전을 변기에다 쏟아버린다. 어느 날 모처럼 밖에 나갔다 돌아오던 ‘나’는 아내의 매춘현장을 목격한다. 손님이 떠난 뒤 ‘나’는 돈을 들고 아내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내와 동침을 한다. ‘나’는 이제 아내 방이 그립고, 아내에게 돈을 주고 싶지만 돈이 없다.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화장지(성행위의 상징)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절대로 보아선 안 될 아내의 매춘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아내는 ‘나’의 멱살을 잡고 광분한다. 묵시의 룰이 깨진 것이다. ‘나’는 주머니 속에 남아있는 돈을 꺼내 문지방 위에 올려놓고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거리로 나온 ‘나’는 자신도 모르게 빌딩 옥상에 올라 있다. 지난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제각각 수선을 떨며 움직인다. ‘나’는 소리친다. ‘나는 불현 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자.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원작〈날개〉는 내용의 난해함과 파격적인 형식으로 당대 대표적인 모더니즘 소설로 평가받는, 이상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작품 속 부부 ‘나’와 아내의 관계는 예속과 기생의 관계로, 사회적응능력이 없는 ‘나’에 비해 아내는 ‘나’를 지배하고 사육하는 위치에 있다. 그녀는 창녀이자 주인이며 가장이다. 사내들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벌고, 남편을 사육하고, 생활경제를 책임진다.

창녀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밖에도 김호선 감독의〈영자의 전성시대(1975년)〉, 김문옥 감독의〈어둠의 딸들(1982년)〉등이 있다.〈영자의 전성시대〉의 외팔이 창녀 영자와 목욕탕 때밀이 창수, 그리고〈어둠의 딸들〉의 임산부 창녀 미영과 카세트 행상꾼의 관계도 모두가 절름발이 관계다. 때밀이 창수는 영자에게 의수를 달아주고, 뱃속의 아이 애비 카세트 행상은 손님을 맞는 만삭의 임산부 미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절름발이, 일제치하를 지나 6·25를 거치며 생겨난 우리민족의 비극사다. 60년대 ‘양공주’ 시대가 그렇고, 70~80년대 ‘창녀’ 시대가 그렇다. 돈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시골 처녀들이 가발공장, 고무공장, 식당과 다방을 거쳐 어쩔 수없이 마지막 처소로 정착했던 곳이 거기, 그들이다.

며칠째 때 아닌 늦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세상이 온통 미쳤나보다.

이상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 안에 내가 보인다.

‘나’가 나를 향해 비웃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지를 움직일 수가 없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

나도 날개가 있으면 좋겠다.

한번 날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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