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장성훈 기자] 탄핵심판 중에도 두문불출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인터넷 방송 정규재TV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은 수척한 모습의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순실 국정논단’ 특검과 탄핵재판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과 문제들에 대해 전면 부정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획설’까지 제기하고 나서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일요서울은 박 대통령이 제기한 기획설과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대통령 인터뷰, 보수세력 결집 위한 메시지 전망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정당은 힘을 쓸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뷰는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특검에서는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최순실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해 조사를 하고 있었고 헌법재판소는 구체적인 선고일정까지 발표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였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 기자회견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선거의 여왕’이라 불렸던 만큼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바로 단독 인터뷰였다. 박 대통령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규재TV를 인터뷰 매체로 선택했다.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만큼 직설적인 표현도 많이 나왔다.
특검 수사·탄핵
우발적으로 된 것 아냐
박근혜 대통령은 정규재 주필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획설’을 제기했다. 그는 “솔직한 심정으로 진행과정을 추적해보면 오래전부터 기획됐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발적으로 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또 정 주필이 국회·언론·노조·검찰 4대 세력이 동맹 맺은 듯 대통령을 침몰시키고 있다며 개혁이 모자랐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박 대통령은 “그동안 추진해 온 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도 있을 것이고, 또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합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계속해서 배후설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탄핵안이 인용된다면 그동안 추진했던 개혁들은 잊혀질 것이다. 정치권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라고 묻자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되는 개혁이 그렇게 무너졌는데 개혁을 또 할 엄두가 나겠나. 개혁은 영원히 물 건너갔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기획설’과 ‘배후설’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권에서는 즉각 비난성명이 쇄도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어제 박근혜 대통령 언론사 인터뷰를 보고 하도 열 받아서 오늘 다시 탄핵 때의 전투복장으로 나왔다. 설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국민을 분노하게 만드는 아주 묘한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또 “본인은 아무런 죄도 없고 누군가에 의해서 기획됐으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음모집단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서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 형식도 희한하고 내용도 허황되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공식적인 발언을 자제했다.
하지만 검찰수사와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기획설’ 발언은 정치권과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놨다.
향정신성 의약품 중독
“터무니없는 얘기”
청와대에서 굿판을 벌였다는 소문과 향정신성 의약품에 중독됐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향정신성 약품을 먹었다든지, 굿을 했다든지 그 외 여러가지가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터무니 없는 얘기다”라며 “허황된 얘기들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탄핵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탄핵 근거로는 취약하다”고 항변했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와 밀회를 나눴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나라 품격 떨어지는 얘기다”라며 부정했다. 그는 “답하는 것도 정말 민망한 일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윤회 씨는 제가 대통령 취임하기 오래전에 다른 사정으로 저를 돕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됐다. 그 후에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정 씨 사이에 불거진 밀회설은 수시로 등장했지만 이날 박 대통령은 확실히 선을 그었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해서도 마지막으로 본 게 어릴 때였다며 정유연으로 개명한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고 말했다. 정 씨가 박 대통령의 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하자 “품격 떨어지는 얘기만 (한다). 정말 끔찍한 거짓말도 엔간해야지 그렇게 저질스러운 거짓말이 난무하는 게 건전한 분위긴가 하는 회의가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제기됐던 각종 소문에 대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 씨의 청와대 사유화
“인정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 정점에 서 있는 최순실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에 대해 “오랜 시간 알아왔고 혼자 사는 제게 소소한 심부름 등 도와준 적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전개된 일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일들이 많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도움을 받은 것은 일정 기간 일부 연설문 표현 같은 부분에서였다.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내가 모르는 사이 사익을 취했다는 건 내 불찰이니 국민들께 심려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자 기자회견을 했었다”며 최 씨의 도움이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씨가 청와대를 사유화하려 했다며 인정하느냐고 묻자 “아니 인정 못한다”며 “농단 관련 의혹은 크게 3가지다. 정책 관여·기밀 누설·인사 개입이다. 최순실이 정책과 기밀을 알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인사의 경우도 한두 사람이 원하고 천거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문화 분야 말고 다른 분야의 인사 과정에 최 씨의 영향이 있었는지 묻자 “없다. 문화 쪽에 조금 있었을 뿐이다. 추천은 할 수 있지만 추천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검찰의 조사와 구속된 차은택 씨의 증언과는 완전히 상반된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최 씨와 사실상 경제적 동일체였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그 자체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엮어도 너무 어거지로 엮은 것이다. 경제공동체라는 말은 너무 이상하니 특검에서도 철회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와 고영태 씨의 관계에 대해 묻자 “전혀 몰랐다”며 “고영태의 이름도 존재조차도 몰랐다”고 답변했다.
헌재 출석은 미정
특검 조사는 OK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부분들을 놓친 건 아닌가”라고 묻자 “"이번에야 비로소 알게 된 일들이 많았다. 살피지 못했다면 내 불찰이고 잘못이다는 생각은 했다.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라고 말하며 잘못은 했지만 전혀 알지 못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과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유 장관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관련 폭로에 대해 “장관으로 재직할 때 말과 퇴임한 후의 말이 달라지는 거,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자체는 모르는 일이다. 뇌물죄도 아닌데 구속까지 한다는 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과했다고 생각한다”며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특검 수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재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재판 절차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며 “재판 받는 입장에서 그 이상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 출석 여부에 대해서도 “헌재 출석은 아직 검토된 바 없다. 특검 조사에는 임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분당에 대해서도 비판의 말을 쏟아냈다. 그는 “저 정당에 가면 표를 많이 얻어서 당선될 수 있다는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정당은 힘을 쓸 수 없다”며 “(그런 정당은) 나라를 위해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작심발언을 했다.
박 대통령의 인터뷰는 보수 세력에게 보내는 강한 메시지가 될 전망이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너무나 많은 허구 속에서 오해를 받고 있는 게 속상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국민들께서 이런 와중에도 지지를 보내주는 데 대해 제가 힘들지만 힘이 난다”며 지지세력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회의 탄핵의결과 특검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에게 이번 인터뷰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촛불집회 세력에게 밀렸던 보수세력들이 태극기 집회를 통해 힘을 결집하고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의 인터뷰는 이들이 다시 한번 큰 힘을 얻을 수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장성훈 기자 seantlc@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