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커가는 ‘가짜 뉴스’ 공포
다가오는 대선…커가는 ‘가짜 뉴스’ 공포
  • 권녕찬 기자
  • 입력 2017-01-26 19:32
  • 승인 2017.01.26 19:32
  • 호수 1187
  • 6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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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가짜 뉴스’ SNS 타고 천리 간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반기문 전 총장 가짜 뉴스로 곤욕
진실인 양 유포 파급력 막강…해외선 총격 사건도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가짜 뉴스’ 공포가 대한민국을 엄습하고 있다. 거짓 뉴스가 진짜인 냥 둔갑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 특히 인터넷 기술 발달로 이런 가짜 뉴스가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출처도 불분명한 가짜 뉴스는 정치인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주식시장 등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해외에선 가짜 뉴스에 현혹돼 총기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가짜 뉴스의 영향력에 세계 각국은 물론 한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흔히 ‘정치인’은 쉽게 가짜 뉴스의 표적이 된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정규재TV’라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그간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오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향정신성 의약품(프로포폴) 중독·청와대 굿판·정윤회 밀회설·정유라 딸·최순실과 경제적 공동체’ 등 항간의 보도에 대해 한 마디로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라 품격 떨어지는 이야기”라며 거듭 항변했다.

박 대통령은 또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자신이 지시했다’라고 기사를 쓴 언론사 등에 대해 고소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어느 누구에게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뒤 ‘세월호 사건 한 달 뒤, 블랙리스트 작성 박대통령 지시’라는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 특검 관계자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의 의혹 보도를 ‘거짓 보도’, ‘가짜 뉴스’라고 보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반기문 총장도 타격
‘출마 UN법 위반’ 가짜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가짜 뉴스로 타격을 입었다. ‘반기문 출마 UN법 위반’ 뉴스는 최근 퍼졌던 대표적인 가짜 뉴스다. 지난 7일 한 인터넷매체의 “반기문, 한국 대통령 출마는 유엔법 위반 ‘유엔 출마 제동 가능’”이란 제목의 기사가 발단이 됐다. 기사는 원칙주의자인 구테헤스 신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결의 위반을 들어 전임자인 반 전 총장의 출마를 반대해 유엔 측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구테헤스 총장은 물론, 유엔 역시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가 없다. 하지만 현재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반 전 총장을 겨냥한 기사는 이후 인터넷 상에서 빠른 속도로 퍼졌고, 심지어 일부 야권 정치인들은 이를 인용해 반 전 총장에 대한 공세에 나서기도 했다.

또 반 전 총장이 지난 12일 귀국 당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의 출마 자격이 첫 질문으로 등장했을 만큼 후폭풍이 일었다. 가짜 뉴스가 진짜로 둔갑해 정치권과 언론 등이 들썩인 셈이다. 해당 내용을 최초 보도한 인터넷 매체는 기사 형태로 된 한 블로그 글을 정상적인 기사로 오인해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뉴스는 ‘카더라 통신’(유언비어)과는 달리 기사체로 쓰인 데다 일부는 인터넷 매체 같은 사이트가 존재해 사람들도 하여금 신빙성을 가지게 한다. 이 때문에 피해 받는 쪽은 타격이 더 크다. 반 전 총장은 유엔법 위반 이외에도 ‘턱받이’, ‘퇴주잔’ 논란 등 잘못된 사실이거나 편집된 영상에 곤욕을 치렀다.
 
가짜 뉴스가 ‘신 사업’
호기심으로 생산하기도


이 같은 가짜 정보가 정치적·경제적인 이득을 노리고 생산된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해외에서는 실제 가짜 뉴스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짜 뉴스가 ‘신(新)사업’ 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유사 언론을 만들거나 간단한 웹 사이트를 만들어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영국 일간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광고 전공자 등 2명이 운영하는 유사 언론 ‘리버티 라이터스 뉴스(Liberty Writers News)’는 매달 최대 4만 달러(약 4800만 원)의 수익을 낸다. 이 사이트의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유럽의 마케도니아의 경우는 관련 웹사이트가 140여개가 만들어져 시장이 포화됐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가짜 뉴스 사업이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뉴스 사이트 '데일리파닥' 홈페이지 캡쳐
    가짜 뉴스가 ‘특수한 의도’를 위해 생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 ‘호기심’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국내 ‘데일리파닥’ 사이트나 ‘페이크뉴스’ 앱 등이 대표적이다. ‘데일리파닥’은 지난해 만우절(4월 1일)에 오픈한 가짜 뉴스 제작 사이트다. 기사 헤드라인만 보면 진짜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용자가 입력한 기사를 클릭하면 ‘정부는 4월 1일이 만우절이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는 문장이 있기 때문에 가짜 뉴스임을 알 수 있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당신도 친구를 낚는 뉴스로 강태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당신만의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 보세요!’라고 돼 있다. 그 하단에는 ‘본 뉴스들은 일반 사용자들이 가벼운 장난으로 만든 가짜 뉴스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기사 등록 페이지에는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문구도 있다. 기사 작성은 제목, 내용 요약, 이미지 등록이 전부로 단순하다.

‘페이크뉴스’도 이와 유사하다. 손쉽게 가짜 기사를 만들 수 있도록 돼 있다. 제목, 언론사명, 본문을 써넣고 저장하면 입력 내용이 포털사이트 앱에 뜬 기사 이미지처럼 바뀐다고 한다. 현재는 삭제된 이 앱을 만든 인물은 카이스트에 다니는 배재성(20)씨로 알려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앱을 만들었다는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미 실현된 사실인 듯 기사로 만들어 간직하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개발했다”고 말했다.

어떤 정치·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보자는 동기부여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치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예 앱을 삭제했다.
 
기업 시가총액 12조 출렁
속은 美 남성, 총기 난사

 
가짜 뉴스는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지난해 6월 ‘이건희 사망 속보’라는 가짜 뉴스는 주식시장을 뒤흔들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사망설 다음날 삼성그룹주 시가총액은 장중 309조 원까지 증가했다가 297조 원까지 떨어져 하루 새 12조 원이나 출렁거렸다.

경찰 수사 결과 이 가짜 뉴스의 제작자는 미국에 거주하던 극우 성향 사이트인 일베(일간베스트) 회원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에 “추천을 받아 인기글로 등록되면 관심을 받을 수 있어 그랬다”고 진술했다.

해외의 경우 가짜 뉴스로 인해 총격 사고까지 발생했다. 지난달 4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아동 성 착취 조직에 연루돼 있다. 피자가게 ‘코멧 핑퐁’ 지하실이 근거지다”란 가짜 뉴스가 퍼져 이를 진짜로 믿은 남성이 피자가게에 쳐들어가 총을 난사한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피자 가게 주인은 살해 협박을 받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가짜 뉴스는 특히 선거 기간에 두드러지는 현상을 보인다. 상대편을 공격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함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대선일(11월 8일)전 3개월 동안 공유·댓글 등 페이스북에서 미국 주요 언론사가 생산한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진짜 뉴스의 공유·반응·댓글 건수가 736만 7000건인데 반해, 가짜 뉴스는 871만 1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가짜 뉴스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고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뤄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해외, 근절 발 벗고 나서
국내 정치권 촉각 곤두

 
이처럼 가짜 뉴스가 ‘독버섯’처럼 퍼져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자 해외 각국은 가짜 뉴스 근절에 발 벗고 나섰다. 당초 애초 표현의 자유를 들어 제재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었던 페이스북은 IFCN(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과 제휴를 맺어 페이스북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독일도 가짜 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올해 9월 총선을 앞두고 난민 유입 세력이 가짜 뉴스를 쏟아내자 법무부 장관은 “SNS에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자는 징역 5년 처벌이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았고, 내무부 장관은 가짜 뉴스 생산과 확산을 막는 별도의 정부 기관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독일 사례처럼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정기관이 인터넷 등을 통한 유언비어 유포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형법상 업무방해 두 가지 정도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명백히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이 가시화됨에 따라 실시간으로 각종 SNS를 비롯한 온라인 동향을 모니터링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정당은 가짜뉴스 등 주로 인터넷과 SNS상에서 유포되는 허위사실과 유언비어에 대해 강력한 대응 방침을 세우고 관련 조직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새누리당은 사무처 산하 뉴미디어국에서 관련 업무를 전담해오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별도의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유언비어 신고센터’를 발족, 현재까지 접수한 건수가 44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고강도 단속·예방 활동에 착수했다. 선관위는 비방·허위사실공표·특정지역비하·모욕행위 등을 중대선거범죄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가짜 뉴스 유포 행위를 포함, 사이버상의 비방·흑색선전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선관위 및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에 ‘비방·흑색선전 전담 TF팀’을 구성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가짜 뉴스에 대해 사이버선거범죄대응시스템과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을 통한 중점 모니터링을 하고, 비방·흑색선전 전담TF팀을 중심으로 중대선거범죄 등에 엄정 대응해 선거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또 페이스북의 한국 법인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와 만나 공동 대응에 합의했으며, 트위터, 구글,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과도 공조에 나설 방침이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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