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값비싼 대권 수업료를 치렀다. 국내 1월12일 귀국한 이후 ‘1일 1구설수맨’으로 기자들 사이에 조롱을 당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크고 작은 실수는 대선 후보 지지율도 떨어지게 만들었다. 당초 귀국 후 ‘컨벤션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라는 비판만 쏟아졌다. 이에 반기문 캠프는 설이후에는 1기 캠프 인사를 ‘2선 후퇴’시키고 현역 국회의원들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할 ‘손발이 부족하다’는 내부 지적에 따른 선거 경험이 많은 실무형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실추된 분위기 반전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 외교관·MB맨·舊정치인 ‘2선후퇴’ 금배지+실무자로
- ‘대선 공약은커녕 메시지 부재’ ‘1일1실수맨’ 오명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을 우선적으로 꼽고 있다. 하루에 한 번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캠프 내 정치인 그룹과 외교관 그룹 간 갈등도, ‘돈이 없어 정당에 들어가야겠다’는 돌출 발언도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라는 틀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한 반 전 총장 스스로 ‘세계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에 기대 한국 대선을 만만하게 본 게 아니냐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메시지 없고 ‘구설수’만 캠프 인적쇄신론
공항철도 탑승권 판매기 지폐 투입 논란부터, 선친 묘소 퇴주잔 논란, 한일 위안부 관련 마크맨들과 설전, 음성꽃동네 턱받이·미음논란, 외국산 생수 논란 등은 초기 대처만 잘했어도 크게 논란이 될 사안은 아니라는 게 여권내 판단이다. 반 전 총장의 친동생과 조카가 구속 기소된 것도 역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서 쉽게 목도된 사건들이다.
정치권에서 반 전 총장이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으로 보는 가장 큰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대통령 후보로서 갖는 메시지가 없다는 점과 준비되지 않은 캠프를 꼽고 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라고 칭했다. 진보와 보수 간 대결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말은 그가 ‘기름장어’ 별명이 왜 붙었는지 설명되는 애매모호한 단어다.
대통합을 기치로 진보와 보수를 다 아우르겠다는 전략이지만 오히려 정체성 혼란만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들에게 반 전 총장이 집권 여당 후보로 분류되고 각인된 상황에서 단기적 성과에 기댄 외교적 수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나아가 귀국하면서 던진 ‘정치교체 선언’도 구체적인 비전 제시에 실패하면서 대국민 설득에서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 정당에 들어가야겠다’는 발언이나 구정권 인사들과 함께하는 모습에서 ‘정치교체 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메시지가 분명치 않으니 기자들이 반 전 총장의 실수에 초점을 맞춰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캠프 내 인적 구성도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선보인 1기 캠프 인사들을 보면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최형두 전 김황식 총리 공보실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 김두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친MB계 인사들이 다수 보였다. 또한 반 전 총장이 외교관 출신이다보니 외교 그룹이 다수를 차지했다. 김숙 전 유엔대사를 필두로 김봉현 전 호주대사, 오준 전 유엔대사, 김원수 전 유엔사무총장, 박인국 전 유엔대사 등이 측근 그룹으로 분류됐다.
외교관 출신 ‘의전’-원로그룹 ‘폐쇄성’ 걸림돌
여기에 구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김종필·노신영·한승수 전 총리,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 신경식 전 헌정회장, 서영훈 전 적십자총재, 안홍준 전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 70대에 육박하거나 80대가 넘는 고령의 원로 자문그룹들로 참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좌장도’ 없는 캠프 내에서는 외교관 그룹과 MB그룹, ‘창당파’와 ‘입당파’ 나아가 신구 세력간 갈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교체’를 내세웠는데 MB 정권 인사들로 채웠다는 비판이 나왔고 곽승준 전 수석에 이어 이동관 전 대변인 역시 출근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반 전 총장의 외교관 그룹도 지지율 하락에 따른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외교관 출신들은 직업 특성상 ‘의전’만 중시하고 ‘메시지’를 만드는 데 소홀하면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 추락에 일조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반 전 총장의 잦은 구설수는 다수가 의전이나 행사 때 이뤄졌다. 이에 귀국 후 잠시 올랐던 지지율은 계속 추락해 20%대 초반에 정체돼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20%대 마지노선마저 무너져 문재인 전 대표와 격차가 두 자릿수 까지 크게 벌어졌다.
또한 원로자문그룹으로 알려진 노정치인들 역시 새로운 인재 영입에 ‘비토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캠프가 활기를 띠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 전 총장은 설명절을 전후에 캠프 내 인적 쇄신을 단행해 2기 참모진들로 꾸릴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기존 MB그룹, 외교관 그룹, 원로그룹은 형식상이라도 2선으로 후퇴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현역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나설 전망이다. 일단 새누리당을 탈당한 박덕흠 의원을 비롯해 탈당이 임박한 정진석, 박찬우, 성일종 의원 등 충청권 출신 의원들이 캠프 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알렸다.
반 전 총장도 1월25일 새누리당 의원들과 접촉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심재철 국회 부의장 주최의 ‘왜 정치교체인가' 조찬 간담회에 나와 “한 패권이 다른 패권으로 넘어가는 악순환이 아닌 참다운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며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면서 정치적 지원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박덕흠·성일종 의원 외에도 충청권 출신 경대수·이명수·이종배·권석창 의원 등이 참여했다. 또한 바른정당 입당을 타진하다 반 전 총장의 정치행보를 따르기 위해 탈당을 보류한 심재철 부의장, 나경원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이 참석했다. 반 전 총장 측에서는 반기문 캠프 좌장은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머리만 있고 손발이 없다!’ 실무진 모집 중
현직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반 전 총장을 겨냥한 야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적극 대처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기름장어’, ‘반반 총장’, ‘역대 최악의 유엔사무총장’, ‘우려 총장’ 등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 자료 한번 내지 못한 게 그동안 캠프 현실이었다.
또한 반 전 총장의 측근 그룹이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선거 경험이 풍부한 실무자들도 대거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참여하는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파견 형식으로 캠프내 상주해 정책과 전략, 홍보, 정무적 역할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공보분야에 대규모 실무진이 투입된 상황이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