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수원 강의석 기자] 경기도는 우리나라의 중심적 역할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 경기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인구수와 산업.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이끌고 있는 중이다.
민선6기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NEXT경기를 주창하며 경기도의 정치. 경제. 복지를 내세웠고 연정으로 협심의 경기도를 향해 끊임없이 증진하고 있다.
또 남 지사는 경기도의 연민정책으로 시대적 대명을 위해 그의 모든 역량을 펼치면서 경기도의 발전과 그가 꿈꾸는 경기도를 위해 오늘도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경기도의 시대적 중요성과 경기도의 어원 그리고 경기도의 변천상황을 재조명해 보기위해 ‘경기도 탄생 1000년’을 기리며 경기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봤다.

▲ 경기의 어원
말 그대로 풀이해보면 ‘서울(京)’과 ‘서울 주변지역(畿)’을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래, 京은 천자의 도읍을, 畿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던 도성 주위 1000리(里)의 땅을 의미했다.
이러한 경기제는 중국의 당(唐)이 지방의 고을을 적(赤)·기(畿)·망(望)·긴(緊)·상(上)·중(中)·하(下)의 7등급으로 나누어서 다스렸던 제도로서 도성 안 혹은 경도(京都)가 다스리는 곳을 경현(京縣, 또는 적현(赤縣))으로 도성 밖 주변지역은 기현(畿縣)으로 구분해 이들을 천자가 거주하는 3경(京)에 각각 두고 특별지역으로 통치하던 데서 비롯했다.
경기제가 제도적으로 완비된 것은 당나라 때였지만 경기의 이념적 기초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주례(周禮)’ 등의 경전에서 이미 나타났고, 그 형태는 역대 왕조의 ‘왕기(王畿)’ 또는 ‘기내(畿內)’를 계승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 및 통일신라에서도 왕기나 기내의 용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왕도(王都) 또는 그 외곽지역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경기제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고려왕조라고 할 수 있고 ‘근본의 땅’(根本之地)혹은 ‘사방의 근본’(四方之本) 등으로 인식됐다.
▲ 경기도 지역의 변천과정
옛 기록에 의하면 경기도는 원래 고대 진국의 땅이었으나 삼한 정립 이후 마한지역에 속하게 됐다. 기원전 18년 경 한강유역에 도읍을 세우고 등장한 백제(百濟)의 중심지로 자리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신라·백제가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였으며 고구려를 거쳐 신라에 귀속됐다. 남북국시대에는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제의 실시에 따라 한주에 편입됐다.
경기도 지역은 고려가 도읍을 송악(지금의 개성)으로 하고 개경이라 칭하게 된 이후 우리 민족의 중심무대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995년(고려 성종 14) 전국을 10도로 나누면서 현재의 서울과 경기도를 관내도라 했다.
1018년(현종 9) 개경 및 그 주위 지역을 묶어 공식적으로 ‘경기’라고 칭했으며, 1069년(문종 23)에 양광도·교주도·서해도의 39개 주현이 새로이 편입돼 기존의 개성부와 더불어 ‘경기제(京畿制)’가 확대됐다.

경기제가 중앙에서 분리돼 지방제도로 형성된 것은 고려후기 경기좌우도가 성립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 당시의 경기는 지금의 경기도 지역에 비하면 다소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양광도 또는 충청도 북부지역이 현재 경기도 땅이었다.
조선왕조가 개국하면서 한양이 새 도읍지로 정해지자 경기도 권역의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한양과의 거리를 따져서 일부 지역은 이속되고 새로운 지역이 편입됐다.
1402년(태종 2)에는 경기좌우도를 합쳐 경기좌우도성이라 했고 태종 13년에는 다시 도성으로부터 거리를 참작해 현재와 거의 다름없는 경기도 지역을 확정했다. 그 다음해인 1414년 1월 관제를 고치면서 경기를 좌우도로 나누지 않고 그냥 ‘경기’라 부르도록 했다.

경기가 도(道)로 확립된 것은 1390년(공양왕 2)으로 경기를 확장하여 좌도와 우도로 나누고 각기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를 둔 때부터였다. 이때의 경기 확장은 ‘과전법(1391)’을 시행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과전법에서는 과전을 경기에 한해 지급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그에 소요되는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기의 확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곧 조선시대의 도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 조선왕조로부터 탄생한 경기도
2014년은 ‘경기도’가 이 땅에 자리 잡은 지 600년이 되는 해였다. 60간지로 환산해 보면 10번째 순환을 맞이한 셈이다.
경기도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앙일 뿐만 아니라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로 일찍부터 우리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됐다.
특히 한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어 오래전부터 경작이 시작됐고 교통이 편리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산 곳이었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경기도를 300년 동안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고 수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오늘날 경기도라 부르는 지역은 조선왕조 초기 지방행정의 큰 틀을 8도제로 했을 때 정해진 것으로 이제 600년이라는 연륜을 지니게 됐다.

▲ 2017년 경기도의 현재와 미래도약

오늘날 경기도는 27시 4군을 거느리고 1200만 명이 거주하는 최대 광역자치단체가 됐으며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거점지역으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에는 늘 경기도가 있었다. 연정으로 정치적 협치를 이루었고, NEXT경제로 신 성장 동력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다각적인 문화와 예술은 경기도의 르네상스를 창출하게 했다.
또 경기도는 가난을 부유함으로 이끌었고, 산업과 교육 그리고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의 심장이 됐다.
곳곳에 산재돼 있는 문화제들과 힐링의 공간이 자리하는 경기도는 현재의 비상에서 전 세계로의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2017년 민선6기 끝자락에서 남 지사의 지도력을 다시금 재평가 해보면서 ‘NEXT경기’에서 우리나라의 꿈이 실현되기를 믿어본다.

수도권 강의석 기자 kasa59@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