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로 보는 섹스 <色, 戒>

“섹스에 있어 극도의 쾌감은 곧 고통이다”
세상 모든 남녀를 불문하고 섹스행위를 하다 절정에 이를 때면 심하게 얼굴을 찌푸리고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섹스 쾌감의 본모습이다. 좋으면 좋아서 웃으며 즐거워해야 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사람이 너무 웃어도 눈물이 나듯, 섹스에 있어서 극도의 쾌감은 곧 고통인 것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오르가즘의 쾌감도 비례하는 것이다. 2007년,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이안감독은〈색, 계〉속의 정보부대장 이(양조위분)와 연극배우이자 스파이 왕치아즈(탕웨이 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보다 본질적 섹스의 형태에 접근을 시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왕치아즈는 대학 연극부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는 애국 급진파 광위민(왕리홍 분)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친일파 핵심인물인 정보부대장 ‘이’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광위민에 마음이 있던 왕치아즈는 계획에 동참한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먼저 ‘이’의 아내(조안첸 분)에게 접근하여 신뢰를 쌓은 후 ‘이’에게 접근하지만 그가 상하이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불발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3년 뒤, 홍콩에서 있는 왕치아즈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다시 ‘이’의 암살계획을 도와 달라고 한다. 그래서 또 다시 만나게 된 왕치아즈와 이는 그동안 서로 무언가 깊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 만났던 우산 속이나 카페가 아닌 호텔의 침대위에서, 만남을 거듭할수록 이는 점점 경계를 풀고 그녀를 더욱 더 깊이 탐하게 되고, 몸을 던져 그의 마음을 얻은 왕치아즈 역시 더 이상 연기가 아닌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사랑으로 인해 암살계획은 실패하게 된다는 얘기다.
역사나 전쟁 따위의 영화 속 이야기는 관심 없다. 탕웨이의 무성한 털도, 양조위의 튼실한 거시기도 재미없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킥킥거리며 입에서 입으로 논란이 되었던 20분이 넘는 실연 같은 숨 막히는 섹스 장면이나, 그 기묘한 요가를 능가하는 체위 따위는 지금 이야기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음양오행의 모순된 본질을 갖고 있다. 지구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당연한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과한 웃음은 눈물이고, 극한의 슬픔은 넋을 잃는다. 섹스에 있어서 오르가즘의 모습은 고통이라고 상대가 좀 더 심한 고통을 받기를 원해 있는 힘을 다 해 눌러대는 사랑 또한 이해 못할 미친 사랑이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건 한 이면일 뿐이지 본얼굴은 아니다. 돌아서면 남보다 못한 치졸한 질투의 대상이 바로 사랑이다.
극한 상황인 전쟁이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섹스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와 ‘왕치아즈’는 전쟁 가운데 늘 적과 함께하는 긴장의 일상을 산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사랑과 섹스는 본능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긴장하면 설레고 흥분된다. 포근하고 부드러움이 아니라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진정한 쾌락이다. 긴장과 두려움 속에 적과 동침하는 연기 자체가 극도의 흥분이고, 극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스릴 있는 행위가 오르가즘이다. 원래 훔친 사과가 더 맛있고, 첫 여자와 첫 경험이 더 떨리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비정상이네, 변태네, 새디스트네 하는 건 우리가 흑인보고 검둥이라 칭하는 거나 다름없다.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다. ‘이’의 부인은 남편을 가리켜 ‘남들 앞에서만 신사적’이라 말 한다. 신사적인 것은 절대가 아니란 뜻이다. 마님이 왜 머슴과 놀아나고, 여자들이 왜 젊은 청년의 탄탄한 복근에 사족을 못 쓰겠는가?
둘은 서로 죽이고 죽어야하는 그래서 함께해야 하는 적의 관계다. 둘은 만나면 섹스다. 다른 건 상관이 없다.
생각나고 할 일이란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그게 유일한 이유고 해결책이다. “난 다이아에 관심 없어. 그걸 끼고 있는 당신 손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는 매번 나를 안을 때면 피를 흘리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때까지 멈추지 않죠.” 이와 왕치아즈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들은 마침내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왕치아즈는 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난 두려워요. 아무것도 안하고 나를 지켜보고만 있던 당신들이 그가 내 가슴에 파고들어왔을 때 그의 머리를 쏴 버릴까봐.”라 고백하고, 이는〈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연인인 김태희를 잔인하게 고문하듯이 그녀를 총살하라 한다. 서로에게 다가온 상대를 신중하게 경계를 했던 남녀가 사랑을 간과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결국 육체의 뜨거운 욕망은 그들을 비극으로 몰고 가게 한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장아이링’의 소설〈색,계〉는 실화를 바탕으로 써졌고,〈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두 번째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기록을 만들며 선전했지만, 동명소설을 근거로 한 영화는 사실을 왜곡 했다는 이유로 영화 개봉과 함께 ‘이안’감독은 매국노로, 미스 베이징 출신 걸출한 신인배우 ‘탕웨이’는 중국을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욕망을 뜻하는 ‘色’과 신중을 뜻하는 ‘戒’가 연결된〈色, 戒〉라는 제목은 표면적으론 ‘사랑과 섹스’지만 내면적으로는 인간의 ‘삶과 욕망’을 의미 한다. 이안 감독은 인터뷰에 “사랑과 고통은 공존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의 전반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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