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를 만나다 32 <씨받이>
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를 만나다 32 <씨받이>
  •  기자
  • 입력 2010-01-05 17:22
  • 승인 2010.01.05 17:22
  • 호수 819
  • 5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운의 種女<씨받이>

뻐꾸기는 자기 스스로 포란을 하지 못하고 붉은 눈이 오목새 등 다른 새의 둥지에 무단으로 탁란(托卵)을 한다. 알을 품고 있는 오목새의 둥지를 지켜보다가 어미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슬쩍 알을 낳고는 날아 가버리는데, 오목새보다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미처 부화하지 못한 오목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버리고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독차지 한다.

오목새는 자기보다 더 큰 뻐꾸기를 자기 새끼인줄 알고 열심히 키우지만 성조가 되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버린다.

‘씨받이’란 혼인한 부부의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함으로 인해, 자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부인의 동의하에 조건부로 동거를 하는 편법이다. 또 ‘씨받이’는 아이를 낳고 아이가 젖먹이 일 때 적당한 시기에 대가를 받고 떠나야 하는데, 이후 어떠한 경우에도 어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정실부인이 낳은 자녀로 인정해야 한다.

한국영화를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는 당시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소재로 주목을 받으며 유수 국제영화제(베니스)에서 최초로 귀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수상했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의 내용을 떠나 부끄러운 사실로 혹여 나라 망신시킨다는 비난과 우려도 함께 샀다.

조선시대, 대갓집 종손 신상규(이구순 분)는 부인 윤씨(방희 분) 사이에 자손이 없자 일가 종친이 모여 집안 회의를 통해 ‘씨받이’를 들이기로 한다.

‘씨받이’로 선택된 옥녀(강수연 분)는 상규와 대면을 하게 되는데 상규는 첫눈에 옥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총애하게 된다. 부인은 이를 시기하지만 옥녀가 태기가 있자 어쩌지 못한다.

옥녀는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점점 상규를 노골적으로 사랑하게 되자, 자신도 ‘씨받이’였던 어머니 필녀(김형자 분)는 그런 옥녀를 필사적으로 만류를 하지만 한번 시작된 사랑 놀음은 거침이 없다.

드디어 해산날이 다가오고, 옥녀는 원하던 아들을 낳지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되고, 집으로 돌아온 옥녀는 결국 목을 맨다는 이야기다.

‘씨받이’를 선정하는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잘 낳는 것이다.

‘씨받이’로 들어오는 여자는 대게 천한 신분이거나 가난한 과부나 아이를 잘 낳는 신체조건을 갖춘 여자로, 그 조건에 따라 그 보수도 달랐다고 한다.

특히 성교 시에 피부가 보랏빛을 띠고, 입술이 진홍색에서 자주색으로 변하며 입술이 굳어지는 여인은 곱절의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씨받이’가 선정이 되면 월경에 맞추어 합방의 길일을 음향오행에 의해 택한다. 월경에 알맞은 날은 월경이 그친 날로부터 28~29시가 지난 날로, 흰 면포로 월경 피를 받아 그 색이 금빛일 때가 잉태의 적기이며, 반면 선홍빛일 경우에는 미정(未精), 청담빛일 경우에는 태과(太過)라 하여 피했다고 한다.

씨받는 날이 정해지면 여인은 소복재계하고 삼신에게 빈 다음 신방에 드는데, 이때 본부인은 합방의 장지문 밖에 앉아 씨받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도를 하거나 경을 읽으며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영화 <씨받이>는 과거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필요로 했고, 그를 위해서는 여러 명의 첩을 두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씨받이’를 택해서라도 대를 이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극화 한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16세의 어린 옥녀를 씨받이로 등장 시키면서 보다 더 위태로운 문제를 영화를 통해 제기하고 있다.

그 시대에야 여자 나이 열여섯이면 결혼도 했다지만 지금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씨받이’라는 단순한 애기 낳는 도구로서의 여자뿐 아니라,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마지막 남은 젊음마저도 이용하고 유린한다는 사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하게 한다. 흥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영화, 그 속에는 감독의 깊은 인간적 고뇌가 보인다.

한 나라의 전통은 오랜 세월을 걸쳐 정착되므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명예와 부, 그리고 가문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었던 조선시대. 가문의 대 잇기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풍조와 남아선호사상이 맞물려 생겨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씨받이’ 문화다.

이제는 버려져야 마땅한 조선시대에나 성행했던 악습 중의 하나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 다른 변형된 모습을 하고 여전히 유행처럼 성행하고 있다. ‘대리모’라 불리는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대신 아이를 낳아주고, 특정 남자들은 질 좋은 ‘씨내리’ 종마가 되어 정자를 팔아먹는다.

오늘날,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은 여전하여 며느리는 노예 대접을 받고 학대받으면서 ‘씨받이’ 존재로 살아가기는 마찬가지다.

여자는 시집을 가면 부모를 떠나야하고, 신랑은 귀한 4대 독자라 아들 하나 안 낳으면 안 된단다.

다행히 요즘은 아들 못 낳는다고 쫓겨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며느리는 시가의 씨받이 같은 존재일 뿐이다.

오늘도 산부인과를 드나들며 성감별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여자들이여!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제발 이제부터라도 여자로써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자.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