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나 안나면 포기라도 할텐데…”

지학(志學 : 10대)의 정은 번갯불 정이요/ 이립(而立 : 30대)의 정은 장작불이요/ 불혹(不惑 : 40대)의 정은 화롯불 정이요/ 지명(知命 : 50대)의 정은 담뱃불 정이며/ 이순(耳順 : 60대)의 정은 잿불 정이요/ 종심(從心 : 70대)의 정은 반딧불 정이라. 노년의 성(性)을 재미있게 표현해주는 남도속요(南道俗謠)의 ‘정타령’에 나오는 가사다.
현대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꾸준히 증가시킨다. 그 결과 노인 인구는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핵가족화와 산업구조 속의 개인주의 등 급변하는 사회문화의 변화로 과거에 비해 훨씬 늘어나고 있는 노인의 삶에 관한 문제들을 간과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삶의 질에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노인들이 갖고 있는 성에대한 관심은 온갖 매스컴을 통해 우리에게 부정적인 일탈행위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에서 이런 노인의 성문제를 다룬 두 편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김성홍 감독의 <실종>과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다.
비록 멜로와 스릴러로 이야기와 장르는 판이하지만 다큐를 표방한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적 노인들의 성’ 이란 소재를 다룬 영화로 관객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인간은 의학적으로도 70~80세까지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간과하며 받아들이던 ‘노인은 중성’이라는 명제는 실상과는 거리가 먼 허구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규칙적인 성생활은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노령의 남성은 고환과 음경의 위축이 방지되어 전립선 질환이 예방되고, 여성은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으며 노화도 방지되고 자신감도 높아지며 심폐기능까지 좋아지고 면역기능도 상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령의 인간에게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 노인의 성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는 우리 문화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영양상태가 좋아졌고,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성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기가 쪼그라들고 힘이 없다고 해서 성적 욕구마저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외소하게 퇴행해가는 물리적 현상에 반해 심리적 욕구현상은 더 할 수 있다.
<실종>의 산골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촌로 판곤(문성근)이나, <죽어도 좋아>의 공원에서 소일하며 외로운 일상을 보내는 박치규 할아버지도 외형상 늙고 힘없는 노인이지만 그들 내면에는 여전히 성적욕구의 인자는 살아 존재했던 것이다.
인간 집단사회가 힘의 논리로 중심을 이루며 이런 사실을 간과했을 뿐이지 동서양은 물론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존재했던 현상들이다.
72살의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열일곱 살 난 아름다운 처녀 뷔르리케와 열애에 빠졌다.
75세를 넘긴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지드는 “나는 아직도 성적 환희를 멸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으며, 70세의 빅토르 위고는 젊은 하녀 브랑쉬의 풍만한 육체의 노예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날에 비해 훨씬 가부장적이고 평균수명도 짧았던 조선시대의 우리네 실상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중종 29년(1534) 기사에 어전에서 벌어진 노인 남성과 노인 여성이 비정상적으로 성욕을 해결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늙은 장모와 사위가 간통을 하고, 70세의 노인이 40세의 딸을 간음했다는 것이다. 노인은 “문득 음욕이 생겨 참을 길이 없어 간음하게 됐다.”라고.
그리고 딸은 “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범했다. 부끄러워 고함을 지르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하는 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미암 유희춘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솟구치는 성욕에 시달렸다하고, 퇴계 이황 선생도 엄숙하고 단정한 학자의 ‘낮 퇴계’와 용맹한 남성으로의 ‘밤 퇴계’가 달랐다고 한다.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현아를 바라보는 판곤의 눈이나, 우연히 고원에서 마주친 이순예 할머니를 바라보는 박치규의 눈은 비정상이 아니다.
그들을 향해 솟구치는 음욕 또 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대상이 달랐을 뿐이고 해결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사람의 몸이 성생활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성생활에 연령제한은 없다고 한다.
특히 사회활동에서 은퇴한 노령에서의 성은 젊은 사람에게보다 더 요긴한 것이 된다.
그들에게서의 성은 시들어가는 인생의 꽃을 피우고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불순하고 주책없이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 심리와 편견은 점점 두드러져 노인들의 성적욕구는 소멸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성에 대한 요구나 표현을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행동도 처벌해야 할 억제의 대상도 아니다.
성은 한 개인의 필수 요소이자 기본적인 권리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존재 방식이다.
또 성은 단순한 생리적 능력 뿐 아니라 이성과 친밀한 인간적 교류를 지향하는 욕구나 행동 등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영화 <실종>에서 시골 촌로들이 마을 어귀에 모여앉아 지나가는 미니스커트의 다방레지를 보며 던지는 넋두리가 잊어지지 않는다.
“생각이나 안 나면 포기라도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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