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가 아내로 보이니? <敵과의 同寢>

사랑 없는 관계는 적보다 위험하다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음양(陰陽)의 이치로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듯이 우리 삶 가운데는 많은 것들이 오월동주(吳越同舟), 不可不 敵과 함께 어우러져 일상을 이루며 산다.
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적이 있다. 상극이 되는 두 개의 적이 서로 공존하므로 인해 완전한 하나의 유익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적(利敵)과 서로 공존함으로 인해 해를 끼치며 파국만을 초래하는 이적(夷狄)이다. 씨앗이 떨어져 땅속에 묻혀서야 비로소 새싹을 낼 수 있듯이 24시간 계속 태양이 우리 머리위에 있는 것도 곤욕이다. 그리고 물과 불이 함께 어울릴 수 없듯이 선과 악도 절대적인 상적이다.
그리고 또,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관계의 위험한 유형도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한 배를 탄 오바마와 힐러리가 그렇고, 한 솥밥 먹으며 적인지 아군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렇고, 한 집에 주소를 두고 애까지 낳고 살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예전 같지 않는 ‘웬수’ 남편이 그렇다.
1991년,〈좋은 아들〉과〈포가튼〉을 만들었던 스릴러 감독 조셉 루벤은〈적과의 동침〉이라는 걸출한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낸시 프라이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젊은 시절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을 했고 무엇보다 남편을 적으로 표현해 더욱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로라(줄리아 로버츠분)는 재력을 가진 의사인 마틴(패트릭 버긴분)이 극도의 결벽증에다 심한 의처증까지 있는지 모르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 후 곧 본성을 드러내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구타를 한다. 계속되는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한 로라는 마틴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다시는 찾을 수도 없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어느 날 이웃 동료의사와 함께 보트를 타고 밤바다 여행을 나서게 되고, 풍랑을 만나 로라가 실종된다. 그러나 로라는 몰래 헤엄을 쳐서 집으로 돌아와 준비해 둔 소지품을 챙기고 결혼반지는 변기에다 버리고 집을 떠나고, 남편 마틴은 수영을 못하는 로라가 익사한 것으로 알고 장례를 치른다.
한편 로라는 낮선 지역에서 이름까지 사라로 바꾸고 새로운 남자 벤을 만나 사랑을 일구며 새 삶을 시작하는데, 남편 마틴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사태는 급반전한다. 로라와 수영을 같이 했다는 친구는 로라가 그동안 수영을 배웠고 수영뿐만 아니라 체조도 배워 잘 한다는 것이다. 변기에 반쯤 걸려있는 결혼반지까지 발견한 마틴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로라를 찾아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으로 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로라는 마틴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찾게 되고, 로라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온 로라는 소름끼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욕조의 수건과 선반위의 통조림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오디오엔 마틴과 함께 잠자리 할 때 듣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다음순간 절망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로라 앞에 음흉한 미소를 띠며 괴물 같은 마틴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녀들의 밤 축제’중 ‘진노의 날’이 공포의 분위기를 업 시키는 위기의 순간에 연인 벤이 찾아와 마틴과 대결을 벌이지만 벤은 쓰러진다. 벼랑 끝의 로라는 마틴을 향해 총을 겨냥하고 경찰에 전화를 한다. ‘나는 침입자를 죽였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긴다.
인간은 어쩌면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때로 여러 개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얼굴마다의 극명한 차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남편 마틴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부와 명예를 지닌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평범한 정신과 의사다. 하지만 아내인 로라에게는 아니다. 정신과 의사는 심한 결벽증에다 폭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배이고, 지극한 사랑은 중증의 의처증 환자인 심각한 인격 장애자일 뿐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 전문 감독이 만든 스릴러 영화다. 스릴러 속의 에로스는 국내에서도 고 김기영 감독의 ‘화녀’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의 김성홍 감독의 ‘실종’에 이르기까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우리의 삶 속 그것도 한 이부자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어떤 스릴러보다 그 공포가 덜하지 않다.
인간에 있어서 섹스는 그 자체로만 자리해야 하는 고유영역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섹스 본연의 모습으로서 좋은 섹스관계를 이룰 수 있다. 사랑이다, 결혼이다 하는 그 어떠한 영역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 이름으로 인하여 어떤 모양으로든 변질될 수밖에 없다. 마틴과 로라도 처음만나 연애하던 시절의 섹스는 행복 했다. 그렇지만 사랑이 무르익고 결혼을 한 뒤 신혼여행 시절이 다르고, 한 집안에 가정을 꾸리고 아내로 자리하고 살아갈 때의 섹스는 달랐다. 섹스라고 다 같은 섹스는 아니다. 남녀가 교합하여 사정에 이르는 것만이 섹스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오래 전 이웃에 하루가 멀다 매일 원수처럼 싸우며 사는 부부가 있었다. 허구한 날 입에 술을 달고 사는 놈팽이 남편의 폭력에 아내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하루도 가실 날이 없는데도, 자고만 나면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유별나게 코큰 남편의 또 다른 밤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로라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 모든 걸 버린다. 사랑도, 남편도, 자신의 이름까지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외딴 먼 곳으로 떠난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수 있을 만큼 소중하고, 그 모든 속박과 올무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로망이다. 우리는 늘 로망을 부르짖으면서도 로라가 되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오늘도 적절한 가면을 쓰고〈적과의 동침〉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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