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니면 ‘도’ … 벤처정신으로 위기 돌파
‘모’아니면 ‘도’ … 벤처정신으로 위기 돌파
  • 홍성철 
  • 입력 2003-11-13 09:00
  • 승인 2003.11.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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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시절 구태정치·지역구도 맞서 벤처정치 실습탈당·재신임·대선자금 수사등 특유의 승부수 띄워정국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대선자금 공방전은 갈수록 가열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는 급기야 특검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처럼 현정국이 극한 대치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배경에는 내년 총선정국을 겨냥한 여야 정치권의 주도권 장악 포석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밀리면 정국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고, 주도권을 넘겨주면 내년 총선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여야 정치권을 옥죄고 있다는 분석.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고통치권자인 노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여야를 아우르며 화해와 협력의 정치를 조성해야 할 노 대통령이 오히려 앞장서서 정국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 노 대통령의 ‘코드정치’에 이어 이른바 ‘벤처정치’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벤처(venture)는 DJ(김대중) 정권때 유행했던 단어다. DJ정권 당시 소자본으로 모험투자를 해 큰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벤처기업’ 붐이 일었던 것.DJ도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벤처기업을 적극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러한 벤처마인드로 인한 폐단도 적지 않았다. 벤처 창업이 봇물을 이루면서 ‘벤처 사기극’ 등 새로운 범죄 유형이 성행했고, 정치권과 연계된 ‘벤처게이트’로 비화되기도 했다.실례로 지난해 1월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이재오 의원은 ‘10개 벤처업체 정치자금 조성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당시 “주가조작 의혹이 있는 23개 벤처업체 가운데 10개 업체는 권력이 개입, 주가조작을 한 혐의가 짙다”며 “당에 들어온 제보에는 여권의 일부 경선주자가 벤처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것도 있어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DJ정권때 ‘벤처기업’ 붐으로 유행을 선도했던 ‘벤처’라는 단어가 참여정부 들어서는 ‘벤처 정치’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다.이른바 ‘벤처 정치(venture politics)’는 `모험정치`를 일컫는다. 또 모험정치는 용기와 도전정신을 수반해야 한다. 따라서 업체와는 달리 정치인들이 벤처정치를 펼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정경유착이나 부패정치 등 구태의연한 정치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도 어쩌면 현실정치에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는 기성 정치인들의 잘못된 관행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정치개혁을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부족했던 것.이처럼 아직 벤처정치가 뿌리를 내리기 힘든 한국 정치환경하에서 노 대통령은 이러한 벤처정치를 몸소 실천에 옮긴 몇 안되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스스로 외로운 정치역정을 선택했고,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던 지역구도에 과감히 몸을 던져 국회의원 선거 2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한차례 낙선하는 산 경험을 쌓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벤처정치는 비록 현실 정치권에서는 먹혀들지 않았지만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정치인 최초의 인터넷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됐고, 그의 용기와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지지자들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자금과 조직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노 대통령이 경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도 다름 아닌 그의 벤처정치와 이를 열성적으로 지지한 ‘노사모’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밑거름이 됐다.대선 과정에서도 노 대통령은 예측불가능한 벤처정치를 감행했다. 이른바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단일화에 합의했고, 그는 극적으로 단일후보가 되는데 성공했다. 하향세를 거듭하던 그의 지지율은 후보단일화 이후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고, 결국 지난해 12월 대권을 손에 쥘 수 있게 됐다.이처럼 정치적 결단이나 위기때마다 벤처 마인드를 접목한 승부수를 띄웠던 노 대통령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작금의 정국상황에서 특유의 벤처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노 대통령의 벤처정치 사례로는 민주당 탈당, 재신임 국민투표 전격선언, 대선자금 전면수사 등 다종다양한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신당론 등을 둘러싼 민주당내 분열이 심화되자 ‘탈당’ 카드를 꺼내들어 신당파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11일 중앙당 창당식을 가진 열린우리당 태동을 지원했다.또 측근인 최도술씨 비리사건이 터지자 ‘재신임 국민투표’ 카드로 정국주도권을 일시에 장악하는 정치적 모험을 단행했다.검찰의 SK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SK측으로부터 100억원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자 ‘대선자금 전모 수사’라는 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최씨 비리사건이나 대선자금 문제에 관한 한 노 대통령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특유의 `벤처 마인드`로 정면승부수를 택했다.참여정부 출범 후 꺼내든 노 대통령의 이러한 벤처정치는 일면 성공한 부분도 없지 않다.

탈당 카드로 주춤했던 신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이러한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이 태동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했다.또 재신임 카드로는 집권이후 한나라당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정국주도권을 일시에 빼앗아 오는 수확을 거뒀다. 그러나 ‘대선자금 전면 수사’ 카드는 ‘특검’이란 복병을 만나 그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이 10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거부권 행사란 또 다른 카드가 남아 있긴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석수를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또 노 대통령의 이러한 벤처정치에 대한 비판도 부담이다. 노 대통령이 야당시절 구태정치나 지역구도에 도전한 벤처정신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나 최고통치권자로서 국정과 국민을 담보로 벤처정치를 펼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견해다. `예측 가능한 정치`야 말로 정치안정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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