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보살도 자신 앞날 몰라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간단한 논리의 코미디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란 정답 없는 질문에 무녀를 대입했다. 족집게 보살도 자신의 앞날은 내다보지 못한다는 코미디로 그 해답을 찾는다.
영화는 코미디 장르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패밀리가 떴다〉로 코믹한 이미지를 쌓은 박예진은 청담보살만의 콧소리를 잘 살렸다. 원맨쇼 코믹물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 노련한 상업영화는 주변 인물들도 잘 활용하고 있다. 박휘순, 현영 등 카메오들의 등장은 극의 내용과 무관하지만 생뚱맞지는 않다.
직업은 무당이지만, ‘태랑’(박예진)은 커리어 우먼이다. 서울 청담동에 터를 잡은 럭셔리 점집 살롱 명당자리에 앉아 값비싼 미래 예언의 대가를 받는다. 평범한 집에 대나무 깃발을 꽂은 여느 점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런 영화적 설정은 20대 관객에게 어필할 만 한 칙릿류 느낌을 만들어낸다.
임창정이란 교집합이 청담보살을 영화〈색즉시공〉과 겹쳐 보이게 한다. 색즉시공에서 색(色)을 뺀 코미디 청담보살은 주변 인물들로 코믹함을 이끌어내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감동 스토리를 찾아간다. 이상형 남자는 그녀를 배신하고, 별 볼일 없지만 선량한 남자를 찾아간다는 뻔한 스토리가 두 영화를 엮는다.
우연처럼 집도 절도 없는 청년백수 ‘승원’(임창정)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무녀 어머니가 언질한 운명의 상대란다. 운명을 믿고 사는 것이 곧 운명인 태랑은 어쨌든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보면 볼수록 가관이지만 운명의 상대라니 한 번 만나나 보자는 심사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가 남자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영화는 이 중요한 대목을 조금 뜬금없이 넘긴다. 비상식적인 행동에 비호감 이미지였던 승원을 어느 순간 순수하고 착한 남자로 변환시키는 지점이다. 서로가 탐탁지 않게 출발한 연애였지만, 스위치를 돌려놓은 것처럼 갑작스런 심경 변화가 일어난다.
때마침 나타난 첫사랑 상대는 사랑의 장애물이었다가 돌연 오작교가 된다. 극단적인 방식의 못된 남자는 승원의 진심을 의미 있게 만든다. 이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남자는 반전 같은 진심을 안긴다. 상투적인 결론을 위한 계산된 감동이다.
대신 소소한 에피소드들에 웃음 포인트가 담겼다. 책에서 발췌한 듯한 명언들을 폼 잡고 잘근잘근 씹어가며 낭독한다. 일상 대화체와 별개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용되는 문어체 문장들을 때마다 밑줄 그어주는 센스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김수미는 웃음 비중에서만큼은 주연급이다. 점집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콩트 같은 웃음을 던지고 간다.
운명은 정해져 있거나, 개척해가야 할 숙제다.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역행을 선택하는 영화는 반전마저도 뻔하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그래서 코미디다.
[뉴시스 윤근영 기자]iamy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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