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새누리당 내 인적 청산을 두고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서청원 의원의 갈등이 일촉즉발 모습이다. 새누리당 윤리위원회가 지난 13일 본격 가동됨에 따라 인적 청산을 둘러싼 진통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9일 서 의원은 검찰에 인 위원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데 이어 법원에 직무정지가처분신청까지 냈다. 다음 날인 10일에는 의원총회에서 25분가량 공개 발언을 통해 인 위원장을 면전에서 공격했다.
이에 정치권은 인 위원장과 서 의원이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새누리당을 향한 언론과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려는 것 ▲서 의원이 ‘분골쇄신’하여 친박계 인적 청산을 최소화 하고, 인 위원장은 이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상징적 인적 청산’을 통한 자신의 주가 상승을 꾀하려는 것 ▲인명진-비박계의 ‘반기문 옹립’을 위한 당 청소 작업으로 인해 서 의원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 인 위원장과 서 의원의 ‘벼랑 끝 혈투’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 親朴, 좌장 빼고 다 산다? 서청원 ‘분골쇄신 시나리오’
- ‘노이즈 마케팅’→‘서청원 항복’→‘상징적 인적청산’→‘보수 대통합’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이 지난 9일 친박계 인적 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탈당을 강요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며 고소장과 직무정지가처분신청을 서울남부지방검찰청과 법원에 각각 제출했다.
서 의원은 이날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인 위원장이 당헌·당규 절차를 무시하고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탈당을 강요하여 정당법 제54조를 위반했다”라고 했다. 또 “이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 비대위원장은 여론몰이를 통해 인민재판 방식으로 정당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하며 한미 군사 훈련을 ‘전쟁 연습’으로 폄하하는 등 좌익 성향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한 것을 후회한다”고 자책했다.
특히 서 의원은 지난 10일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며칠 전 (인 위원장이) 저더러 할복하라고 했는데 언제쯤 할복하면 좋겠느냐”고 친박계 인적 청산을 주도하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면전에서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자 인 위원장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인 위원장은 지난 11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토론회에서 “(서 의원이) 나라가 이렇게 됐는데 왜 죄를 안 졌나. 우리 모두가 국민 앞에 죄인이다”라며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으란 것도 아니고 정치적 탈당도 못 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인적청산에 반발하는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을 압박했다.
나아가 인 위원장은 지난 9일 비대위원을 구성한 데 이어 13일에는 윤리위원회까지 가동하며 자진탈당을 거부한 친박계에 맞서 출당 작업을 본격화했다.
‘극적 엔딩’ 나오면
내부 개혁 가능할 수도…
이처럼 서청원 의원과 인명진 비대위원장 사이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자 정치권은 처음과는 다른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피한 친박계가 인명진이라는 호랑이를 만난 것으로 보이나 이 모든 게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는 것. 즉 인 위원장이 친박계의 인적청산을 강행하고 서 의원이 인 위원장에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본인들만의 ‘노림수’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첫째로 정치권은 이 둘 사이 갈등의 내면에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당의 인지도 향상을 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평가한다. 당초 서 의원과 인 위원장은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로 알려졌다. 인 위원장의 고향은 충남 당진이고, 서 의원은 충남 천안 출신이다. 충청권 인사들이 ‘반기문 대망론’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충청지역의 결집력은 상당하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인명진 비대위원장 체제 등장의 숨은 공로자는 서청원 의원이었다. 당시 서 의원은 “인명진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맡겨도 될 사람”이라고 인 위원장 추인을 망설이는 친박계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인명진호가 출범했지만 인 위원장은 되레 서 의원에게 칼끝을 겨눴다. 이후 두 사람은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마다하지 않고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에 언론은 연일 두 사람의 갈등을 집중 조명했고 국민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같은 ‘노이즈 마케팅’이 바로 인 위원장과 서 의원이 그린 ‘시나리오’라는 것.
한 여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만약 이런 상황에서 서 의원이 전격적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꺾으면 인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모습이 된다”며 “그런 극적 효과만 있다면 새누리당의 내부 개혁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것 아니냐”고 내다보았다.
실제로 인 위원장과 서 의원은 연일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며 당내 갈등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 위원장이 서 의원에게 항복을 받아낸다면, 인명진호(號)의 개혁에 진정성이 실릴 가능성이 농후한 게 사실이다.
인명진 ‘김종인 급’ 만들어
신당 견제 나서나…
둘째로 정치권에서는 서 의원이 ‘분골쇄신’해 친박계 의원들의 안위를 보장하려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으로 인해 당내 인적 쇄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서 의원이 인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을 제외한 친박계 인사의 인적 청산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것. 즉 서 의원이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을 감수하는 대신 인 위원장을 ‘김종인 급’으로 만들어 추가 탈당 세력을 막고, 내부 개혁을 성공시킴과 동시에 신당의 성공까지 견제하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이렇게 되면 인 위원장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최순실 게이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서 의원이 당을 위해 ‘인적청산’ 하겠다는 본인을 향해 인신공격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인 위원장은 연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서 의원과 대립각만 계속 유지한다면 자신의 주가는 자연히 올라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친박계가 일사불란하게 서 의원을 고립무원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모습도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정현 전 대표와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은 탈당계를 제출했다. 이주영, 홍문종, 김정훈 의원 등 역시 본인들의 거취를 인 위원장에게 백지위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 위원장이 모든 책임을 떠안은 서청원 의원만 정리(?)한다면 새누리당의 인적 청산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서 의원은 본인 혼자만 탈당하면서 친박계 전체를 살릴 수 있는 ‘상징적 인적 청산’을 꿈꾸고 있고 인 위원장 역시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주면서 본인 인지도 향상과 인적 청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서청원이 지금처럼 인명진을 향해 융단폭격을 하면서 거의 자폭 수준의 정치행위를 보이는 것은 ‘나 하나로 정리하자’는 메시지인 것을 인명진은 알고 있다”면서 “인명진 또한 서청원이 저렇게 함으로써 서청원 하나만 정리하면 국민들도 수긍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과정이 인명진에게는 많이 남는 장사임이 두말할 나위 없다. 여전히 100석에 가까운 정당의 수장으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돌아선 친박계…
각본대로 움직였나?
끝으로 정치권은 두 사람의 갈등은 결국 ‘반기문 옹립’을 위한 인명진 위원장과 비박계의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인 위원장이 비박계와 ‘친박 청소·보수 정권 재창출을 통한 반기문 영입’을 골자로 한 밀약을 맺었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서 의원은 뒤통수를 맞게 됐다는 내용이다.
인 위원장이 지난 2일 반 전 총장을 향해 “당 쇄신에 성공하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고 한 대목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인 위원장이 추진하는 ‘친박계 청소 작업’이 사실상 반 전 총장의 새누리당행에 ‘레드 카펫’을 깔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인 위원장이 “비박계가 엊그제까지 같은 식구들이었는데 새누리당이 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그런 절절한 마음으로 (탈당을) 했을 것”이라고 발언한 대목 역시 인 위원장과 비박계 사이 ‘밀약’이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약속 대련이었는데, 진짜 얼굴을 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속내를 눈치챈 친박계 의원들이 급히 인명진호(號)로 배를 갈아탔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계는 지난 12일 의원총회에서 서청원 의원 주변에 자리하지 않았다. 얼마 전 친박계 한선교 의원은 “인 비대위원장은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당내에는 싸우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게 많다”며 “저희가 힘을 보낼 테니 싸워달라”고 말했다. 홍문종 의원 역시 “이 모든 사태에 저도 당의 한 일원으로 잘못했고, 용서하기 바란다”면서 “당의 미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말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새누리당에서 인 위원장의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당은 대선 후보도 내지 못하는 불임정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한 게 사실이다. 반면 서 의원이 총대를 메고 당을 떠나 ‘상징적 인적 청산’이 이뤄진다면 일각에서 나오는 ‘보수 대통합’도 꿈만은 아니게 된다. 이에 친박계가 대선 직전 바른정당과 연대나 합당, 나아가 반기문 전 총장 영입 등을 염두에 두고 서 의원 편이 아닌 인 비대위원장 편에 섰다는 전언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