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출산 대책’을 폐(廢))하라
[기고] ‘저출산 대책’을 폐(廢))하라
  • 일요서울
  • 입력 2017-01-13 16:51
  • 승인 2017.01.13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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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 의무를 헌법에 넣자고?

작년말 행정자치부에서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파문을 일으켰다. 모든 지자체 출산통계 및 지원서비스를 담겠단 해당 사이트에 지역별 가임기 여성숫자 비교 그래프가 떴다. 이를 본 사람들은 “여자가 가축이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발상이 황당하다. 이게 ‘저출산 극복’에 도움된단 생각은 어떻게 짜맞춰도 여성의 인격권이 고려가 안 된 것이다. 보육정책 중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고 하는데, 홍보할 게 그렇게 없었나? 사실 정보도 무의미하다. 지자체 인구가 제각각인데 단순숫자 비교니 말이다. 담당자는 디자인만 신경썼을 거다. 사회의 축소판일까. 가임기 규정을 생각없이 가져오니(15~49세) 국가가 미성년자 임신을 장려하는 것만 같다.

물론 미성년자도 임신할 수 있다. 또한 미성년자 포함한 누구나 출산을 결단하면 축복받으며 낳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몇 년 전 학생인권조례 논쟁에선 차별금지 사유에 ‘임신’을 넣는 것에 개신교계열 보수단체들이 길길이 뛰었다. 그들은 대부분 낙태 허용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임신하면 낙태도 안 되지만 퇴학당해도 따지면 안 된다는 게 그들 생각이다.

크게 봐선 출산 문제에 관해 젊은 여성들 전체가 받는 압력이 그와 흡사하다. 남편 친척과 사회는 임신을 권하지만, 학교와 직장에선 그럴 경우 자퇴·퇴사를 종용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저출산 대책’에 예산이 쓰이는 것을 냉소하거나 분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복지로 출산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주장·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애를 안 낳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 있기 때문에 안 낳는 것이다. 과거엔 돈이 없어도 애를 낳았고, 지금도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아이를 더 낳는다.
- 한국의 독보적 출산기피는 비혼 출산이 환영받지 못하는 동아시아 문화와 관련이 깊다. 복지제도를 확충하기 보다는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일리는 있지만 단편적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므로, ‘돈이 있어서 안 낳는다’라고만 정리하기는 힘들다. 빈곤층이 아이를 더 많이 낳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유층이 아이를 더 많이 낳는 것도 사실이다. 중간층이 아이를 낳지 않는 데엔 경제적 이유가 있다. 여성 소득이 높을수록 출산을 기피하는 세태는 사실일 것이나, 이 역시 ‘돈이 많아서’ 안 낳는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출산/육아 과정에서 여성이 퇴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 그 여성은 ‘돈이 많아서’ 안 낳는 게 아니라 출산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못 낳는 것이다. 한국 여성은 고용율과 출산율 모두 여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국 여성은 취직도 안 하면서 애도 안 낳는다”고 규탄하고 싶을지 모르나 진실은 두 개를 병행하기가 너무 어려워 대체로 양자택일하기에 둘 다 낮아진단 것이다.

임금격차가 여성인권의 문제만은 아니나, ‘여권이 높아서’ 출산율이 낮아진 게 아니라 ‘아직도 여권이 낮아서’ 떨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문제란 지적은 합리적이지만 그렇기에 출산·육아 지원대책을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실시하는 정책적 디자인이 요구된다. 정부가 손을 놓을 일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출산/육아 지원정책을 ‘저출산 대책’이란 이름으로 내세우는 것을 더 이상 찬성하지 않는다. 이 명명에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관점 뿐 아니라 생명을 생산력의 도구로 취급하는 시선이 녹아 있다.

사회가 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걸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저출산 대책’이란 이름이 붙으면 이를 위해 뭐든 해도 되는 것처럼 된다. 가령 여성이 사회활동에서 배제되어 아들 출산하여 시부모의 인정을 받는 것만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었던 세상으로 돌아가길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생각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절대 안 된다’며 말리는 동년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삶의 현실이다. 압축근대화를 거친 한국의 기성세대가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리 따지면 청년들이 그래서 숨이 턱 막히는 것도 자연스럽다.

위기의식에 누군가는 출산의 의무를 헌법에 넣자고 하지만 그리 된다면 다들 한국 사회를 탈출하려 들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능력되고 (경제력으로) 여력되는 사람부터 먼저 나갈 것이다. 출산율 쳐다보며 공동체의 종말을 우려하지만, 문제를 그리 풀려고 든다면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정신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가 같은 속도로 망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는 곳도,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것을.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걸 인정한다면 저출산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정책적용 대상이 적으면 기획하기가 쉬울 테니 말이다.

‘저출산 대책’이라 말하는 대신, 태어난 아이와 부모가 된 이들에게 집중하여, 그들이 동년배와 후배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출산·육아는 할 만하다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그래야 그 문제가 풀릴 것이다. 국가를 넘어 기성세대 전체가 이런 태도를 에티켓으로 삼아야 한다. 명절날 만난 손아랫사람에게 언제 애를 낳느냐고 묻지 말라. 다만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해줄 것인지를 말하라.
<시대정신연구소 한윤형 부소장>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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