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이 전하는 얘기를 듣기만 한다는 것. 이전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한 측근인사는 최근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칩거중”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이 측근인사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만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라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속이 오죽 하시겠느냐”고 말했다. 건강상태를 묻자 그는 “원래 건강하신 분이라서 특별히 아프신데는 없지만, 마음은 중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검찰이 소환조사에 나설 경우 응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에 이 측근인사는 “지난 번 대국민사과에서 약속한 일 아니냐”며 “언제든 응할 생각이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검찰조사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없느냐고 묻자 “그렇게 생각할 분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전총재는 미국출국 날짜를 아예 정해 놓지 않았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국내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다. 수사 중에 출국할 경우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계은퇴 선언 이후 이전총재는 10여개월간 미국에 체류하며 현실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왔다. 하지만 정가안팎에서 그의 복귀설은 끊임없이 회자됐다. 노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탄핵설·하야설이 나돌 때마다 이전총재의 정계복귀설은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치적 ‘탄력’을 받아 왔다. 이전총재 측근 일각에서는 “이전총재의 정계복귀를 사전에 차단시키기 위해 (대선자금)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청와대와 검찰간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대국민사과를 한 이후에도 정가주변에서는 “이참에 사죄하고 다시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 는 식의 말들이 나돌았다.
하지만 정계복귀 문제에 대해 이전총재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전총재의 또 다른 측근은 “복귀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며 “그럴 일(정계에 복귀하는)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최병렬 대표는 옥인동 자택을 단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어색한 만남’을 가진 것 외에는 전화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한번쯤은 ‘허심탄회’하게 만나 얘기를 나눌 법도 하지만, 워낙 부담스럽고 민감한 문제여서인지 두 사람 모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전총재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SK 비자금 의혹이 사실이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검찰이 요구하면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전총재와 교감이 깊은 한 측근은 “검찰조사까지 받겠다고 한 마당에 뭘 피하고 뭘 감추려고 하겠느냐”며 “마음을 비우고 검찰수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숙 iope7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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